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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Oct 12. 2022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영화를 보고 문득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방학이 끝나고 다시 제주도로 가야 했을 때, 그리고 난 가면 꼭 서귀포 법환동에 가보겠다고 다짐했다. 그 작은 소망은 친구의 자동차 바퀴를 통해 닿았다. 실은 친구의 누나 차였지만 말이다. 혜진이 몬 그 차는 어디선가 멈춰 서고, 깜빡 잠이 들었다 깨었을 때 그녀가 보게 된 것은 어느 바다마을의 풍경이었다. 그곳은 서귀포 법환동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홍반장이 있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배우 김주혁이 연기한 캐릭터였다. 나는 그의 얼굴이 좋았고, 편안하기도 했고 그래서 그 영화에 푹 빠져든 것이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서귀포 어디에선가 차를 멈춰세웠다. 그리고 지나가던 할머니에게 묻는다. 법환동이 어디냐고. 


법환포구에는 어린 아이들이 수영을 하며 놀고 있었고, 날씨는 무척이나 좋아 우리를 그곳에 오래도록 머무르게 했다. 나는 유난히도 호들갑이었다. 사실은 처음부터 제주도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곳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하며, 그렇게 제주도 친구들도 사귀며 그곳의 풍경들이 더 따뜻하게만 다가왔다. 그러나 영화 역시, 또한 현실은 어느 정도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기 마련이었고, 김주혁의 모습을 떠올려야만 그 기억에 대한 소환이 이루어지는데 그건 슬픈 일이기도 하다. 제주도도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파란 하늘이어도, 저 멀리 또 다른 섬이 보이는 신비로운 풍경이어도.


그때의 풍경들은 필름 속에서, 서랍 한 구석에 쳐박힌듯 있지만 나는 그 순간들을 잊지 못한다. 바람의 냄새도 기억할 듯하다. 그 동네 어느 중국집의 볶음밥 냄새는 더 잘 기억한다. 서귀포는 내가 주로 머무르던 신제주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지점에 있어서 또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제주도도 남과 북으로 나눌 수 있을까. 내가 만약 북한을 여행한다면 또 어떤 기분일까. 서귀포는 멀고도 먼 동네였다. 지금 여행을 가라면 그래도 숙소는 신제주에 잡지 않을까.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러면 틀림 없이 홍반장이 나타날까.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2004



그런 그도 여자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능력으로 어떻게 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좋아하던 같은 학교 여자애와의 관계를 그가 나서 도와줄 리는 없었다. 곧 졸업을 하고 취업을 준비하게 될 때 들이닥칠 문제들을 그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를 알면 얻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잡동사니와 같은 추억, 그런 쓸모없는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대피소와 같은 곳이 되니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피난처이기도 할 테다. 육지 사람들은 현실을 피해 불현듯 제주도로 떠나기도 한다. 옛날에는 유배지였던 그곳이 힐링의 장소처럼 여겨진다. 영화로 남겨지는, 여행이라는 추억으로 남겨질 수만 있다면..


내가 사는 곳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아니 말이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부산에서 온 나이트클럽 기도 형, 모두 부산 출신이었던 중국집을 운영하는 한 부부도 만났고, 그들은 곧 아이를 낳아 안고 와 내게 인사시켜 줬다. 그 아이는 제주 태생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대리운전기사를 하던 형님도 잊을 수 없다. 부산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쳤을 땐 못 본 척 지나갔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다시 제주도로 가고 싶어하고 그곳의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실제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 김주혁을 그리워하는 이 마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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