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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Nov 03. 2022

안드로이드의 환자들


Gare de Saint-Cloud


베르사유로 가는 열차 안에서 그녀의 눈은 창문 밖을 향한다. 그녀 고개는 한동안 그렇게 왼쪽으로 꺾여 있고, 그 얼굴은 창문에 기댄 채로 흔들린다. 그러던 중 그녀는 몸을 움직였고 곧 다리에 힘을 주어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열차가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할 때, 끼익 소리를 낸 뒤 문이 열렸을 때 그녀의 두 발은 플랫폼 위에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혼자였다. 몇몇의 승객들은 창문 밖으로 그 모습을 본다. 그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녀는 듣는다. 그것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말이다. 높은 하늘 위로 흰 구름이 떠 있고, 그 모습이 꼭 어린 기린만 같다. 무리에서 벗어나 어미를 잃고, 그래서 풀을 뜯을 때마다 주위를 두리번거릴 듯 말이다. 그녀에게는 멀쩡한 부모가 있지만, 심지어 먹을 것을 걱정해 본 적조차 없을 정도로 그 땅에는 풀이 무성했음에도 자신을 가려줄 크고 높은 두 다리가 없다 느낀다. 

베르사유에 왜 가냐는 엄마의 말에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고 나왔다. 자신의 딸에게 그곳에 사는 친구가 없다는 것을 안다. 집을 나가 늦게 들어와 자신을 걱정시킨 적도 없다는 것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다. 한 사내아이와 집 앞에서 서로의 입술을 갖다 대며 애무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 집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그 녀석은 어떻게 알게 된 거냐며 물은 적이 있을 뿐이다.

"왜 궁금해?"

그녀는 그렇게 말한다. 쓸모 있는 것들을 만나라고. 

"내가 보기에는 꽤나 뺀질 하게 생겼더군. 재미로 만나는 거면 이쯤에서 그만두지 그래?"

문을 닫고 나가라고 쏘아붙이는 그녀에게 엄마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 눈빛에서 한심함이 읽히며, 또는 자신의 남편에 대한 원망이 있어서인지 그녀는 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꼭 제 아빠 같아서.

"연기를 배워봐. 넌 재능이 있어. 외모도 괜찮고 몸매도 괜찮아. 넌 이자벨 므모처럼 될 수 있어."

때론 그녀를 타이른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건 차가운 공기들 뿐이다. 그속에는 어떠한 따뜻한 언어도 도사리지 않는다. 그녀의 방 문, 그 경계에서는 무수한 날선 글자들만이 오갔다. 그 순간 마침내 그녀는 해방되었음을 느꼈던 것이다. 언덕 위로 무덤들이 있던 곳을 지나 마주친 어느 조용한 마을에서. 그것이 자유라면 자유는 무척이나 쓸쓸한 것일 테다. 또는 외로워 더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릴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계단을 내려온 그녀는 자연스레 마을로 향했고 다시 발걸음이 멈춘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어느 작은 카페 앞이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그곳 테라스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꼈으며, 곧 코 아래에 수염이 난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커피 한 잔 주세요."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나 있어 집들 옆으로 난 인도에는 그만큼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차들이 지나다니는 길만이 밝고 환할 뿐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 풍경이 왜 그리도 슬퍼 보였는지 모른다. 왜 그런 눈빛으로 그것들을 보았는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몸에서 찬송가는 멀어진 듯 그녀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다. 그녀는 파란 하늘을 보며 그곳에서 수영하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자유가 그토록 쓸쓸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 당신은 의사를 찾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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