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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Nov 08. 2022

트라우마들(anywhere)


나는 그것이 내가 가진 트라우마라고 생각했다. 그 단어가 알려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그것을 어떤 식으로 표현했을까. 후유증? 아니면 그저 상처라 말했던가. 나았지만 완전히 낫지 않은 기억이었다. 나는 가끔 내가 그것을 잊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우려 하지 않는 상처였다. 심지어 나는 가슴의 흉터를 드러낸 채 다니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것은 나의 훈장이었다.

그러나 잊히지 않는 건 그 순간의 감정들일지 모른다. 나는 공포에 떨었고, 누군가가 내 손을 잡고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그때 만약 수술실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이라도 흘렀더라면 나는 평생 그 음악 선율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이성에게 차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랑 노래를 듣는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잊지 못하지 않을 텐가. 그날 거리에는 어떠한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아 난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노래를 골랐고 선정했다. 아직도 가끔 'Summer Wine'이라는 곡을 듣는다.



도로 위 선로 위로 열차가 달렸고, 그곳에 몸을 실어 나는 따라 흔들렸다.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았는데 밤의 불빛이 그 위로 반짝였다. 그리고 출렁였다. 내가 잊지 못하는 건 아픔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풍경과 소리들, 열차의 흔들림이지 않았던가.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정말 낫게 할 수 있는 병일지, 아니면 후추처럼 뿌려져 고기의 냄새는 잠시 감춰지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때 나는 흥건한 와인에 절여진 돼지고기이고 싶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소주를 마실 테니, 그렇게 취하면 그날 밤은 잊을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잊히지 않고 남았다. 지금은 그저 우스웠던 순간들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어떤 손님들이 남기고 간 안주와도 같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말이다. 그것이 고통이든 아픔이든, 혹은 슬픔이든.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것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건 그때 그곳의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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