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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Nov 11. 2022

안드로이드의 환자들


Le Square Maurice-Gardette


미취학아동들의 놀이터가 되어 그곳은 생기가 불어넣어졌는지 모른다. 늙은 꽃도, 기울어져가는 나무마저도 다시 피어나고 자랄 듯하다. 그 웃음소리와, 때론 미친 것처럼 질러대는 소리에도 정원은 평화롭다. 조용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그의 눈에 비친 풍경은 그랬다. 자신은 비록 담배를 피우고 밤이 되면 술도 마시지만 말이다. 어쩌면 어딘가에서 더 나쁘고 음흉한 생각들에 젖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그는 그곳 높은 나무들에 둘러 싸인 정원의 가운데에 있다. 한 남자가 기침을 하며 콜록댄다. 눈 주위는 거뭇하고 누구라도 그를 구해주거나 구출해줘야만 할 것 같다. 그곳에 누가 작은 집을 지어놓았고, 유리창문도 벽도 없이, 뼈대를 드러내 보인 듯 구조물만이 지어진 그곳 안에 그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곳을 수시로 드나들지만 그의 외로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자신들과 놀아주지 않는다면 그는 그저 동상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따금 몸을 움직여 그 위로 기어오르거나 할 수는 없다. 한 아이가 그에게로 다가온다. 손에 나뭇가지를 쥔 채로. 그리고 그것을 건넨다.

"고마워."

다시 한 번 콜록대며 기침을 한다. 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가 아이를 부른다.

"누노! 이리 온~! 아저씨 괴롭히지 말고."

그는 끝내 그곳을 떠나고야 만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먼저 다가온 이유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의 하루 목적이라면 이해 못 할 일이다. 그는 세상에 죽은 것들만이 있다 믿곤 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 날 병원을 찾고 약을 처방받는다. 마치 담배처럼 플라스틱 파이프를 입에 물고 그것을 들이마시는 것이었는데 차이점이라면 3초 동안 숨을 참고 그것을 뱉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의사는 별 것 아닌 듯 말했지만 그는 나쁜 병이 들린 듯해 우울하다. 그의 입꼬리는 움직여지지 않고, 마침내 입술을 떼어내 누군가와 대화하지도 않는다. 

"고마워요."

냉동식품과 오렌지 주스 한 병을 손에 쥐고야 다시 뱉어내는 말뿐. 그의 손은 외투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의 팔에는 달랑달랑 비닐봉지 하나가 걸려 있을 뿐이다.

"그 장면은 인간이 가진 습성 같은 것을 보여주죠. 무언가에 집중하다, 혹은 그것에 빠져 있다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는 잊히지 않는 것이죠. 곧 그것을 따라 흥얼거리게 되고, 입을 열 수 없다면 입안에서 흥얼거리나 따라 부르겠죠. 손가락을 까딱거린다든지. 피터가 그곳을 나올 때, 계단을 내려올 때 로이가 옆 계단을 통해 내려오며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듣게 되죠. 그 통화 내용을 그가 다 듣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엄청난 단서다 뭐 그런 것이 아니고 그냥 인간 습성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이죠. 그 계단의 구조가 특이했다는 거죠. 그런 게 진짜 재밌는 영화의 한 장면 아닌가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은 그의 표정은, 더 이상은 집 안에서 누군가에 무슨 말을 하지 않고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그 표정은 멍할 뿐이다. 실은 이미 몇 번을 본 영상이었기에 그렇다. 그에게는 하루가 그저 반복되는 것일 뿐, 내일의 의미를 찾기보다 지나간 영상들을 되돌려보며 그 장면을 다시 느끼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더욱 발전적인 일일지 모른다 생각한다. 그는 그 아이들을 떠올린다. 나뭇가지를 자신의 손에 전해준 그 아이의 모습은 쉽게 잊히지 않는 것이었다. 혹은 자신을 불쌍한 자로 여겼던 것은 아닌지.

누군가가 만든 정원이 누군가에 하나의 자연이 되었을 때. 그리고 그곳에 머무르게 된 것은. 그 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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