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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Dec 01. 2022

The Middleman



젊은 시절의 고생, 그 사서도 한다는. 그건 도대체 누가 판 것이었을까. 나는 판매자가 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구매자이고 싶지도 않다.

나는 마치 기쁨과 슬픔이 거래되는 곳에 있는 듯하다. 손에 종이가방 하나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보다, 그러나 원하던 걸 손에 쥐지 못한 채 돌아오는 일보다 더 나은 것은 그곳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일이었다. 그럴지도 몰랐다. 나는 내가 가끔 중개인이고 싶어한다는 것도 느꼈다.

지난 몇 년은, 아니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수많은 번화한 길들을 지나온 것 같다.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기에 갈대 밭을 지나듯 그것을 일상으로 여겼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는 일도 즐겼다. 무언가를 사서 돌아오면 행복했지만 언젠가 그것이 짐이 되었을 때 나는 그때의 기분을 잊은 듯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그냥 남포동 같은 곳을 돌아다니다 오는 게 좋았다.

롯데백화점 광복점에서부터 자갈치역 방향으로 반대로 중앙역 방향으로 지하에 길이 있다. 그곳에도 상점들이 즐비하고 어제는 날씨가 추워 그곳을 걸었다. 가게 불이 하나 둘 꺼지고, 그리고 셔터가 내려지고 난 뒤에 마주한 것은 몇 개의 텐트들이었다. 그들은 캠핑을 온 것이 아니라 누울 곳을 찾은 것이었다.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유목민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그 모습은 사람들에게 되려 위로를 주기도 하지 않는가. 나는 누울 곳이 있고 먹을 것을 살 돈도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한 달을 먹지 못해 심한 굶주림이 찾아오고, 또 혹한의 추위가 들이닥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그 길에는 가혹할 정도의 바람은 불지 않았고, 난방 시설은 되어 있지 않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상점이 있고 지하철역도 있어 어느 정도의 온기는 느껴졌다. 낮이면 산으로 바다로 가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지 않을텐가.

몇 년 전에는 프란시스 맥도맨드 주연의 영화 '노매드랜드'도 이 세계에서 주목받았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해서 말이다. 봉준호 감독이 시상해서도 말이다. 'nomad'는 유목민을 뜻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노마드라는 단어로 불린다. 그런 삶도 인정받는 세상이 되어 있었다.


Nomadland, 2020


기쁨과 슬픔은 어쩌면 주거에서부터, 그리고 먹거리 문제에서부터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사랑과 우정이 중요한가. 의리가 중요하고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소중함이 절실한 세상일까.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더욱 무장되어 있으며, 나는 언제라도 전투할 준비를 하고, 그러나 바닥에 떨어진 건 탄피들이 아니라 누군가가 버리고 흘린 것들 뿐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줍고 내다 파는 삶을 사는 것이었을까.

내가 유명한 영화감독이었다면 때때로 항의를 받았을 것이다. 왜 기쁨을 슬픔을 그런 식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니 그 일에는 그런 스트레스가 따를 것이다. 자신이 흘리고 버린 것들을 되찾으려 사람들은 그곳을 찾아오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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