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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Dec 04. 2022

드니 빌뇌브, 그리고 내 소설



파리에 머물 때 본 영화 'Incendies'. 프랑스어 incendie는 넓게 퍼진 붉은 광채를 뜻한다. 화재, 큰불, 동란, 전란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을린 사랑'으로 제목 지어졌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드니 빌뇌브는 훗날 '컨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등을 연출하게 된다. 그는 퀘백 출신의 캐나다인이고, 나는 지금 그가 만든 영화 '듄'을 보고 있다. 그는 이제 SF 대작을 만드는 감독이 됐지만, 그럼에도 난 Incendies라는 영화를 지우기 힘들다. 그 결말의 충격보다 중동의 한복판에 있는 듯했던 그 시간들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난 그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의 결말이 '올드보이'와 비슷하다 생각했다. 올드보이를 통해 이미 그런 충격을 경험한 적이 있던 나로서는 그래서 그 충격이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충격이라 말하는 이유는 그건 사회문화적으로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올드보이는 반전영화라 할 만큼 스토리의 힘이 크게 작용한 영화였다. 똑같이 감독의 미장센이나 연출 스타일이 빛을 발한 작품이기도 했다.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촬영, 미술, 음악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던 그 영화는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올드보이는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기에 이르렀고, 그리고 7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후 비슷한 또 다른 영화 하나를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난 그 반전 결말보다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로 그 영화를 떠올리고, 그때 파리에 있던 나는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던 사회적인 분쟁들에 관심이 높았기에 그들 모습으로 기억되는 영화일 수밖에 없었다. 나왈 마르완, 훗날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에도 출연하게 되는 루브나 아자발의 모습이 머릿속에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다. 


Incendies, 2010


Incendies, 2010


드니 빌뇌브 그도 이제 영어 영화를 주로 만드는 감독이 되었고, 이젠 프랑스도 퀘백도 아닌 더 먼 세계를 향하는 감독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머나먼 행성들이었다. 보다 완벽에 가까워진 듯한 미장센이지만, 하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그것이다. 이제 서양인들만 나오는 SF 영화 보는 것도 지겹다. 한두 명의 동양인이 그 그림 속에 들어가 있다 해도 다를 것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그저 난 새로운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로미오는 줄리엣을 사랑하지 않았다'라는 이상한 제목의 소설을 쓰게 되었던 것인지 모른다. 공상과학 소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저 로맨스인 것도 아닌 그런 이상한 이야기를 말이다. 난 그 이야기를 통해 올드보이와 같은 반전 결말을 그리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첫 번째 소설이었던 만큼 작품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어설픈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난 그 소설을 잊지 못한다. 꼭 내가 낳은 첫 번째 아이이기 때문이 아니라 말이다. 그런 감정, 그런 생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Incendies 또한 그런 영화가 아니었을까.

듄 같은 영화는 아마도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영상이나 미술도 훌륭하고 완벽을 추구한 듯하지만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나는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는 게 편하고 그건 내게 이미 익숙해진 일이다. 그래서 그런 영화들에 대한 기억이 더 강하게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잠들면서 보던, 잠에서 깨면 왜인지 새로운 일들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나날들. 늘 그렇지만, 하지만 마음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꿈들.


Pari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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