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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Dec 21. 2022

'테이큰'


뤽 베송이 내게 준 영향이란. 어릴 때 난 그가 연출한 영화 '레옹'과 '제 5원소'를 봤다. 그가 각본을 쓴 영화 '택시'도 내게는 프랑스라는 국가를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게 해준 영화였고. 

장 르노라는 프랑스 배우도 알게 되며, 그러나 난 뒤늦게 '그랑블루'를 보고는 뤽 베송의 영화를 새로운 감정으로 대하게 되었다. 난 잔 다르크가 화형 당한 도시 루앙의 어느 호텔 방에서 뤽 베송이 연출하고 장 르노가 출연한 영화 그랑블루를 감상했다. 처음 외국 땅에 떨어져 낯선 두려움에 휩싸였을 때, 물론 길을 걸으면 설렜고 내가 유럽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말이다. 지네딘 지단의 국가, 수도 파리에는 에펠탑이 우뚝 솟아 있고 뤽 베송과 장 르노 같은 사람들이 거리를 거니는 나라. 어쩌면 나는 프랑스를 동경했던 건지도 모른다. 언제나 영국에 가고 싶다 말했으면서 말이다. 목적지는 결국 프랑스가 되었기에 그런 건지도. 그랑블루, 그 크고 파란 물속에 있던 순간들. 그건 잊을 수 없는 품이었다. 더 깊어질 때 얼마나 위험해지는지도 알게 되는 것. 며칠 전 난 텔레비전에서 영화 '테이큰'을 봤다. 

뤽 베송이 각본을 맡은 영화. 나는 또 한 번 뒤늦게 그 유명한 영화를 보게 되었다. 감독은 '13구역'에 이어 피에르 모렐이 맡았고 그래서 영화의 스타일을 짐짓 짐작하기도 했다. 스토리는 이렇다. 전직 특수 요원 출신의 남자가, 그 남자의 딸이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가게 되고 그녀가 그곳에서 납치 당한 뒤 아빠가 범인들을 추적해 복수한다는 내용이었다. 익히 들었던, 그렇기에 예상했던 그대로 흘러가듯 매우 단순한 전개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영화 초반부는 리암 니슨이라는 배우의 연기력으로도 소용없을 정도였다. 차라리 누군가가 나타나 영화를 설명해 줘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고. 그러나 난 전현직 특수 요원의 이야기라면 환장하기에 그냥 참고 지나갔다. 그리고 리암 니슨이 파리로 온다. 



영화가 시작되고 그곳으로 오기까지의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고, 파리에 도착한 뒤 그는 곧바로 전직 특수 요원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여러 장면들을 팝콘 집듯 즐기면서 먹었다. 나는 팝콘이 맛있어서 먹는 사람은 아니다. 차라리 파리 극장에서 '설국열차'를 보며 파트릭 호제 초콜릿을 즐겼던 일이 황홀했다. 그럼에도 난 이 영화를 사랑하고 싶었다. 영화에서 자막으로 드러나는 언어들이 정말 중요한 것인가. 그러나 리암 니슨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런 글자들을 본다면 누구라도 빠질 수밖에 없을 듯했다. 그 장면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너희들이 무엇을 하는지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지 위성으로 다 듣고 보며, 그런데 위성 각도 하나 바꾸는 데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 줄 아냐며 알바니아 마피아들을 겁박할 때 난 산의 가장 우뚝 솟은 곳에 와 있듯 고요함을 느꼈다. 뤽 베송은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인생사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반복이라지만 그 끝에서 바라본 풍경이란 아마도 누군가에 들려주고 싶을 만큼의 기이한 모양은 아니었던지. 수사할 수 없는, 그러나 수사해야만 하는. 경찰이든 정보기관이든 그들은 늘 중요한 지점에서 그런 딜레마를 느끼지 않을까. 뤽 베송은 그것을 조금은 부정적으로 해석한 듯했다. 하지만 같은 줄기에 있는 생각이라 생각하기로 마음먹는다. 어떤 잎에는 빛이 와닿지 않을 수도 있으니. 대신에 뤽 베송은 세상을 더욱 밝히는 역할을 한다 믿고 싶었다. 공권력에 희생을 요구했다기 보다, 공권력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한 명의 인간을 조명했다 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늘 그런 딜레마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딸은 소중하기에, 그렇기에 꼭 구해내야 하는 대상이지만 다소 어이없이 납치당했고 조금은 당연한 듯 아빠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빠의 품보다 그 남자의 거친 털과 피부를 조명하며 놀랍도록 기민하고 빠른, 또는 예상을 뛰어넘는 그의 감각을 비추는 영화였다. 



그가 왜 비행기 안에서 녹음된 범인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들었는지 그때 난 이해하지 못했다. 그 비밀이 풀리는 지점도 바로 그 장면들 속이었다. 위성 각도 하나 바꾸는 데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 줄 아냐며 알바니아 마피아들을 핀잔하던...

엔딩에 가까워질 때는 '오징어 게임'이 떠올랐다. 그렇듯 영화는 여러 연상들의 연결이기도 하다. 어느 것이 과거의 것이고 미래의 것이든. 언제 나온 영화를 언제 보든 간에. 잔 다르크가 천사의 계시를 들었듯, 그랬다듯. 그때 난 그랑블루를 보다 창문 밖에서 성당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 마치 음울이 울려 가슴으로 와닿듯,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그 좁은 길을 내려다보니 일어나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혼을 해 아이를 낳는다면 꼭 딸을 낳고 싶다. 딸을 구하고 싶어서. 그녀가 잔 다르크가 된다면 나는 미래를 바꾸고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는 잉글랜드군에 taken 될 테니. 그렇게 사로잡혀 불에 타 죽고 말 테니. 


Taken, 2008/ Pierre Mor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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