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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Dec 25. 2022

버니지아의 달과도 같았던 꿈


젊음은 영원하지 않지만 그 시절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른다.


10 29 참사를 겪고, 여전히 그 터널 같은 슬픔의 도로를 지나며 그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그 슬픔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는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 서면 거리에는 20대의 사람들로 넘쳐났고 클럽이 있는 골목들엔 클럽 앞에 줄을 선 수많은 어린 얼굴들이 보였다. 그 얼굴들은 나 같은 40대의 사람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그들을 지나쳤고, 길을 틀어 다른 골목을 걷다 익숙한 의류 매장 하나를 마주치게 된다.

이태원 참사 당시 인파 속에서 탈출을 위해 옷 가게 간판을 타는 어느 외국인의 모습을 목격했다. 사진과 영상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간판 그 가게는 부산 서면에도 있고, 나는 부산대앞에서도 봤다. 아마도 전국의 번화한 거리에는 하나씩 있는 매장 같았다. 그러나 별 관심 없었다. 내가 입기에는 너무 캐주얼한 옷들이라 그랬을까. 나는 조금 더 성숙한 모습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셔츠에 넥타이까지 메고 다니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두툼하고 무언가 동글동글한 맨투맨 티를 잘 입고 다니지 않는 탓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스턴이 나를 이끌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췄고, 불쑥 옷 가게로 들어가 그 옷 앞으로 다가섰던 것이다. BOSTON 글자가 프린트되어 있고 그 위로 귀여운 강아지가 그려져 있는 옷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콜로라도, 미시간.. 여러 미국의 주와 도시들이 사람들 시선을 이끌고 있었다. 내가 10대 20대일 때는 파리, 런던 혹은 도쿄 같은 글자들이 나를 유혹했었는데.. 그랬다. 지금 20대의 사람들은 어쩌면 아메리카의 땅을 동경하는지도 말이다.

미치코런던은 어디로 갔나. 20대가 되어서는 부산대 앞 보세 옷 가게에서 산 하라주쿠가 영문으로 쓰여 있는 가방이 어깨에 매여 있었고. 그리고 난 명품 브랜드의 도시 파리로 유학을 떠나고야 만다.



나는 글자를 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20대에 만난 브랜드 아메리칸 어패럴은 그런 내게 혁신을 느끼게 했다. 저런 밋밋한 옷을, 그런데 왜 저렇게 예쁘게 보이게 해놓았을까 생각했다. 간판에는 글자가 적혀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과감하고도 파격적인 피팅 사진으로도 유명했다.

내가 20대일 때는 부산대앞에 킹패밀리라는 이름의 빈티지 가게도 있었다. 나는 그 가게의 단골이었고,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Foo Fighters의 Cold Day In The Sun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문득 미국의 도로를 달리는 상상을 하며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빈티지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그곳 문을 여는 모습도 그렸다. 그 상상은 나를 위로했고 꿈꾸게 했으니 말이다.

나는 나보다 어린 20대의 사람들이 꿈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불현듯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30대의, 40대 50대의 삶을 보다 낭만적으로 그리라고 말이다. 나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고 싶지 않다. 그들보다 어른이어서가 아니라, 그 모습이 미래의 자신의 현실로 느껴지지는 않기를 바라는 아주 작은 소망도 있기에. 나는 현실과 타협해 그저 그렇게 사는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을 언제나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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