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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Jan 16. 2023

74년 전의 여자


나는 그날 외레순이라는 이름의 의자를 구입했고, 그 의자를 집으로 들이고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 소녀를 만났고, 그녀는 내가 불을 끄고 누울 때면 나타나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네 개의 다리로 선 의자를 향해 조명을 비추고, 의자 위의 소녀는 나를 주시하며 말을 걸려 한다. 그 불빛은 누가 만든 것이었으며, 그녀는 왜 내 앞에 나타난 것인가.


"전 그저 앉을 곳이 필요했을 뿐이에요. 전 눕지 않아요."


몇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녀는 내게 편지를 한다 했지만, 그녀가 새로 산 다이어리의 첫 장에 적어준 내 집 주소가 틀린 것이었나 기억을 되돌려보아도 정확히 그려질 리 없었다. 내 손을 떠난 모든 것이 그렇다. 나는 그 글자들을 외우고 있을 뿐이었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낚싯줄처럼 놓아라! 스물여섯의 나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그러면 물고기가 입을 벌린 채로 끌려오든 여자의 머리카락처럼 해초가 엮이든 뭐든 걸려올 것이라고. 인생은 기다림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 바닷물이 변하는 모습을 보며 몇 시간을 쪼그려 앉아 있었다. 잠깐 일어나 서기도 했고, 도로 앉아 무릎 위로 팔을 걸치기도 하며 상념에 잠겼다. 그러니 노을이 지고 밤이 오더라. 나는 끝내 물고기 한 마리 건지지 못했다.

그 후로 나는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가지 않았다. 바다가 지겨워서가 아니라 내가 던진 낚싯줄에 무엇도 걸려들지 않아 억울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몇 시간을 기차를 타고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났다. 스물일곱의 나는 서울에 있었고 그 뒤로 나는 쭉 이곳에 머무른다. 어느덧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이곳 풍경도 조금은 변했다.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면 낡은 것들이 허물어졌다. 그 여자는 아닌가 싶었다. 내 오른쪽 혹은 왼쪽에 나란히 서 있기에 그녀는 내게 과분하거나 모자랐던 건지 모른다. 나는 혼자가 어울린다. 큰 방 하나면 만족하고, 식탁에서 마주보고 앉은 것이 노트북 화면 속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나는 쓸쓸하지 않다. 그들은 계속 말하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의자를 샀다. 차를 타고 아주 먼 곳으로까지 가 새로운 의자 하나를 구입했다. 그 이름은 외레순이었고, 나는 북쪽 유럽의 이름 지어진 것들을 좋아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어도 말이다. 그곳은 너무 멀고, 나는 아득히도 먼 곳에서 그들과는 조금 다른 이름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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