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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Feb 05. 2023

그 책을 읽고..


갈려고 간 서점이 아니었는데 볼려고 본 책이 아닌 책을 읽게 되었다. 이런 저런 책들을 펼쳐 보았고 몇 자의 글자들이 눈 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기욤 뮈소나 밀란 쿤데라의 책 몇 줄을 읽고는 그들이 정말 이런 단어들로 문장을 썼을까 생각했다. 내게는 그 이름들이 너무도 멋져 그렇다. 맨부커상은 왜 한강에게 트로피를 줬을까 그런 질문도 한 적이 있다. 정작 그 작가의 이름이 그토록 멋지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문학은 다른 나라 언어가 다른 나라 언어로 옮겨질 때 번역가에 의해 다시 한 번 태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때로 검사나, 혹은 많은 사회적 엘리트들이 하는 말을 정말 이해할 수 없고는 했다. 다 같은 생각들이 어떤 외피들을 걸치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들이 되어 있기도 했다. 또는 새로운 구도, 구조 속에서 새로운 관측처럼 신비로운 현상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나는 그 시간 교보문고에 있었다. 잠을 거의 자지 않고 밖으로 나와 쉴 곳이 필요했다. 길 한 가운데 어딘가에 턱 걸터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지만 서점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곳 어딘가에 다리를 꼬고 앉아 책 속의 글자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지식인이 된다.

서점에 있던 그 모든 작가들의 글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순간에는 읽을 책이 없어 그것을 집어 들었던 것이다. 한동훈 스피치, 참 단순하고 멋없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끌릴만한 제목이었다. 누구나가 그렇게 생각할 지금 힘이 있는 쪽에서 누구에게나 인정받을만한 스펙을 가진 사람이니, 그가 한 말들을 모아놓은 것이라니 내겐 흥미로웠다. 한쪽 손으로 표지를 적극적으로 가리고 앉아 손을 바꿀 때는 누군가 한 명이 그 모습을 보기도 바란다.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그전에 압구정동에 있다는 현대고를 졸업하고 검사 중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검사가 되었으니. 나는 그것을 분명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정작 그가 한 말들 중에 가장 이끌렸던 말은 그 한 문장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그는 검사가 되고 처음에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너무 바빠서 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느긋하게 살았을 수도 있지만 매우 바쁘게도 살았다. 내 생각은 그렇다. 잠 안 자고 돌아다니면 죽을 수도 있다. 나는 한때 잠을 자지 않기를 원했다.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도 아까워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잠을 자는 쪽을 택해야만 했다. 그것이 살 길이라는 것을 알고는 말이다. 나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사라지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곧바로 다른 문장을 생각했다. 그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다. 그러나 검사로서는 혹은 검사들에게 하는 이야기라면 그보다 단순하고 힘 있는 문장은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얻게 된 정보 하나는 법무부가 대한민국 건국 이래 부처 이름이 바뀌지 않은 유이한 기관이라고 했던가 뭐라고 했던가, 아무튼 나는 그 순간 고개 끄덕일 듯했고 그런 정보를 던지면 사람들을 주목시킬 수 있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한동훈이라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큰 관심이 없지만,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그가 다음 대통령이 되는 그런 일이 몇 년 뒤에는 진짜 벌어질 수 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쪽에서는 정말로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을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봤을 때 그는 매우 정상적이고 영리하고 심지어 현명하기까지 하다.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할 말을 한다. 그리고 계속 이겨왔다. 그와 대척점에 선 사람들은 그의 약점을 볼 것이고 그가 어떻게 싸우고 지는지를 보려 할 것이다. 이기는 과정에서는 진짜 재능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대통령 말고 법무부 장관 말고 훌륭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고 진심으로 사는 사람들로 넘쳐나 되려 어지럽기까지 하다. 나는 점차 깨닫게 된다. 내가 누구를 지지하냐보다 내가 어떻게 싸우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한동훈이 좋더라. 호감이 가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지나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내게는 지금 이 길에서의 싸움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서점에서 책을 읽으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살기는 힘들어 죽겠는데 앉아서 편한 소리나 하고 있네 그런 말이라도 내뱉어야 할 지경으로 이르고는 했다. 나는 그때 그랬다. 그래서 그건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그 한 문장, 혹은 그 글자들이 말이다. 서점을 나와 나는 다시 걸었다. 검찰에 출근하는 검사들의 심정은 그런 것일까 생각도 들었다. 저 좁은 창문들로 빽빽한 건물로 다시 들어가야 하나. 그러나 그건 내 일이다. 그래서 내가 검사라면 참 좋을 것 같다. 그 건물 안의 계단도 문도, 또는 책상 위에 놓였을 그 수많은 글자들도 내게는 모두 흥미로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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