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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Feb 17. 2023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HE FUTURE IS FEMALE'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등장하는 한 문장이다. 대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아니었고 누가 낙서를 해놓은 듯 벽에 적혀 있는 글자들이었다. 그 벽 앞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지나가며 장면이 전환된다. 온통 남자들 뿐인 이야기 속에서, 그러나 코니 삭스를 연기한 캐시 버크의 대사들이 큰 감동을 불러 일으킨 영화이기도 했다. 남자들은 모두 입을 닫고 있거나 아니면, 그러거나 변명 따위를 늘어놓는 등 어리석은 모습들을 보이며 현실을 보여준다. 심지어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울고, 게리 올드만은 자신의 연인 앤 앞에서 비틀대기까지 한다. 근래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던 지도자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이지 않았던가. 그녀가 유럽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안다. 그리고 영국은 방황하는 듯했다. 그들은 2020년 1월 31일 브렉시트를 단행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축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다. 나는 훗날 영국 정치를 공부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 웨스트민스터의 거리들을 거닐며, 그런데 영국은 음식이 맛이 없다고 하던데 사실인지 모르겠다.


이리나는 러시아 여자다. 그녀는 남편에게 두들겨 맞기까지 하는 불쌍한 여자이지만 리키 타르에 정보를 넘긴다. 하룻밤의 짧은 사랑을 나눈 뒤 그녀는 그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린다. 당신 조직이 알고 있는 그 정보들은 모두 가짜이며 KGB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영화 속 남자들은 하나 같이 까마득히 모르거나 무관심하며, 그럴 때면 정신 차리라는 듯 여자들이 나타나 경고를 한다. 아니었다. 그들을 찾아간 건 남자들이었다. 그러나 남자들의 노력을 담은 영화이기도 했다. 여자들은 촉이 좋다고 하지만, 그러나 두 발로 걸어 알아내는 것들에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조지는 곧 이 모든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며 조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조지는 매우 여성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피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장 쓸쓸하고 안타까웠던 건 현장에서 움직이던 요원들, 톰 하디와 마크 스트롱이었다. 리키는 파리에서 돌아오지 않을 그녀 이리나를 기다리고, 짐은 빌을 저격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이 영화에서 가장 멋있었던 건 빌, 콜린 퍼스였다.



그러나 내게 가장 멋있는 사람은 결국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이 스웨덴인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된다. 파리에 있을 때도 이케아가 인기였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오랜 파리를 여행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도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케아의 나라 사람이 영국 정보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그게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몰랐다. 이 영화를 누가 만든 것인지, 어느 나라의 사람이 연출한 것이었는지 말이다.



"당신에게도 맹점은 있었죠."


빌이 한 대사였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말이다. 대충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철저하고 치밀한 조지를 연기한 게리 올드만이었지만 콜린 퍼스 앞에서는 한 방 먹고 만다. 그런 사람도 자신의 사랑 앞에서는 흔들리고 착각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영화 속 암호이기도 했고, 존 르 까레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제목의 의미처럼 다 큰 남자들의 어린 싸움을 그리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많이 공감했고 슬프기까지 했다. 파리에서 돌아올 때 나는 결국 내가 스파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프랑스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들을 사귀었고, 또는 시리아 사람들을 만나 내통하기도 했다. 물론 파리는 보고 있었을 것이다. 저 검은 코트를 입은 한국놈은 무엇을 하고 돌아다니나. 그러나 나는 파리를 사랑했고 프랑스를 좋아했듯, 우리 앞의 운명이란 선택지를 주지 않고 이리 저리 옮겨다니는 것이기에 여전히 슬프다. 그들은 모두 슬펐지만 영화의 끝은 행복했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부른 'La mer'가 흐르며 조지는 영국 정보부 수장의 자리에 앉게 된다.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2/ Tomas Alfred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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