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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Feb 13. 2023

신을 신고 상상하라



20대의 어느 날부터 30대의 어느 날까지 내가 줄곧 신고 다닌 신발은 컨버스였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것이어야 했고 짙은 색이어야만 했다. 나는 젊고 싶었고, 그리고 어둡고 싶었다. 그땐 몰랐던 것이었지만 그 고무 밑창은 너무도 얇아 발바닥이 아팠고, 그것이 내 오랜 허리 통증의 원인 중 하나인지도 몰랐다. 젊은 꿈은 늘 잠을 설쳐야만 했던 것인지. 40대가 되어 되려 안정을 찾은 허리는 내 머리를 편히 잠들게 한다. 이리저리 뒤척이지도 자다 깨어 저린 다리와 발가락을 만지지도 않는다. 나는 그 통증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렸고, 그러나 다시 그 밑창 얇은 신을 신기를 택하며 손을 떤다.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한다. 요즘은 그 시절처럼 걷고 또 걷지는 않으니 괜찮을 것이다. H&M에서 산 12,900원짜리 세일상품은 다시 나를 그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나는 이 땅을 더욱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신을 신고 어느 날, Montorgueil 거리의 어떤 술집 테라스에서 늦은 밤 그녀와 술을 마셨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가 내가 기억하는, 내가 잊지 못하는 인생 한 장면 중 하나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한 대화가 기억나지 않으며, 우리의 말들은 그곳에서 증발하듯 사라져버렸고 오직 그 술집의 냄새와 술잔에서 풍겨오던 위스키의 냄새만을 떠올릴 뿐이다. 파리에서 나는 젊음의 끝에 와 있는 듯했고, 하지만 곧 커다란 두려움이 내 온몸을 덮칠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괜찮다. 나는 정말 괜찮아진 듯하다. 두꺼웠지만 이젠 닳고 닳아 비만 오면 여기저기서 미끄러지는 신발을 도무지 그냥 둘 수 없었기에, 결국 새 신발 하나를 사기로 마음먹고 저렴한 스니커즈 한 짝을 구매하기로 결심한다. 비 오는 남포동 거리를 혼자 걸으며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태양은 없다'와 '아멜리에', 그리고 이런저런 영화들에서 보았던 그 신발 디자인은 나를 늘 걷게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감각적으로 가장 예민했을 때다. 그래서 갈수록 뚱뚱해지는 신발들에 대한 우려도 생긴다.

그 끝에 탄생시킨 것이 나의 첫 번째 소설이었고 나는 그것을 역사로 여긴다. 원고를 보낸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 당하고 만 신세였지만 나는 예술을 했다 믿는다. 그리 멀지 않았던 미래에, 서울 거리의 사람들은 온몸에 전자문신을 박고 돌아다니고, 그러나 전기를 어디서 끌어오느냐에 대한 질문에 나는 스스로 답해야 했고 인간은 걸을 때 발바닥의 압력으로 전기를 생성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한 말들은 금새 잊히지만 나는 그 신발을 잊을 수 없다. 그 신은 곧 나의 신이었으니.

1년을 넘게 세 번째 소설을 썼고 모두 쓴 것 같지만 이번에는 투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때 생각이 나서 말이다. 물론 두 군데에서 벌써 저희와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왔지만 말이다. 나는 내 소설이 나만의 착각인지 시대의 외면인지 알지 못하겠다. 제목은 '두 얼굴'로 정했다. 끝은 늘 새로운 시작이며. 나는 더 멋진 소설을 쓰고 싶어 새로운 신을 신기로 마음먹는다. 그렇다고 둘째를 장난처럼 낳은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들이지만 그건 모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고 들려주고 싶은 목소리였다. 그 이야기는 가본 적 없는 평양에 대한 에세이이자 영화감독이라는 배우의 짧은 여정을 그린 소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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