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어느 날부터 30대의 어느 날까지 내가 줄곧 신고 다닌 신발은 컨버스였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것이어야 했고 짙은 색이어야만 했다. 나는 젊고 싶었고, 그리고 어둡고 싶었다. 그땐 몰랐던 것이었지만 그 고무 밑창은 너무도 얇아 발바닥이 아팠고, 그것이 내 오랜 허리 통증의 원인 중 하나인지도 몰랐다. 젊은 꿈은 늘 잠을 설쳐야만 했던 것인지. 40대가 되어 되려 안정을 찾은 허리는 내 머리를 편히 잠들게 한다. 이리저리 뒤척이지도 자다 깨어 저린 다리와 발가락을 만지지도 않는다. 나는 그 통증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렸고, 그러나 다시 그 밑창 얇은 신을 신기를 택하며 손을 떤다.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한다. 요즘은 그 시절처럼 걷고 또 걷지는 않으니 괜찮을 것이다. H&M에서 산 12,900원짜리 세일상품은 다시 나를 그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나는 이 땅을 더욱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신을 신고 어느 날, Montorgueil 거리의 어떤 술집 테라스에서 늦은 밤 그녀와 술을 마셨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가 내가 기억하는, 내가 잊지 못하는 인생 한 장면 중 하나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한 대화가 기억나지 않으며, 우리의 말들은 그곳에서 증발하듯 사라져버렸고 오직 그 술집의 냄새와 술잔에서 풍겨오던 위스키의 냄새만을 떠올릴 뿐이다. 파리에서 나는 젊음의 끝에 와 있는 듯했고, 하지만 곧 커다란 두려움이 내 온몸을 덮칠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괜찮다. 나는 정말 괜찮아진 듯하다. 두꺼웠지만 이젠 닳고 닳아 비만 오면 여기저기서 미끄러지는 신발을 도무지 그냥 둘 수 없었기에, 결국 새 신발 하나를 사기로 마음먹고 저렴한 스니커즈 한 짝을 구매하기로 결심한다. 비 오는 남포동 거리를 혼자 걸으며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태양은 없다'와 '아멜리에', 그리고 이런저런 영화들에서 보았던 그 신발 디자인은 나를 늘 걷게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감각적으로 가장 예민했을 때다. 그래서 갈수록 뚱뚱해지는 신발들에 대한 우려도 생긴다.
그 끝에 탄생시킨 것이 나의 첫 번째 소설이었고 나는 그것을 역사로 여긴다. 원고를 보낸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 당하고 만 신세였지만 나는 예술을 했다 믿는다. 그리 멀지 않았던 미래에, 서울 거리의 사람들은 온몸에 전자문신을 박고 돌아다니고, 그러나 전기를 어디서 끌어오느냐에 대한 질문에 나는 스스로 답해야 했고 인간은 걸을 때 발바닥의 압력으로 전기를 생성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한 말들은 금새 잊히지만 나는 그 신발을 잊을 수 없다. 그 신은 곧 나의 신이었으니.
1년을 넘게 세 번째 소설을 썼고 모두 쓴 것 같지만 이번에는 투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때 생각이 나서 말이다. 물론 두 군데에서 벌써 저희와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왔지만 말이다. 나는 내 소설이 나만의 착각인지 시대의 외면인지 알지 못하겠다. 제목은 '두 얼굴'로 정했다. 끝은 늘 새로운 시작이며. 나는 더 멋진 소설을 쓰고 싶어 새로운 신을 신기로 마음먹는다. 그렇다고 둘째를 장난처럼 낳은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들이지만 그건 모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고 들려주고 싶은 목소리였다. 그 이야기는 가본 적 없는 평양에 대한 에세이이자 영화감독이라는 배우의 짧은 여정을 그린 소설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