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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Apr 16. 2023

'생 로랑'



사실, 줄거리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이브 생 로랑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라고 해두면 될 것 같다. 그의 일과 사랑을 다룬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가스파르 울리엘의 모습들로 기억되는 영화였다. 또는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의 연기력이 강한 인상으로 남은 영화였다. 그리고 루이 가렐이 출연하는 영화다.

나는 그를 생제르망 거리에서 직접 본 적이 있다. 루이 가렐, 그때 를 눈 앞에서 마주쳐 몸에 전기 같은 것이 흐르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나는 마치 다시 그곳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듯하고, 그 멋진 거리의 한 가운데에서 개똥을 밟진 않을까 또 땅을 볼 것만 같다. 처음 파리에 갔을 때 그 거리에서 개똥을 밟은 추억이 있어 그랬다. 그리고 나무에 신발을 닦고 털던 내 모습을 보던 한 아줌마의 모습. '개똥 밟았구나!' 그러나 그들에겐 이미 오래 전의 추억 같은 것이 돼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그런 자가 있었으니. 하지만 그건 불길한 징조이지 않으리라!



나는 가스파르 울리엘을 정말 좋아했는데 그날의 기억 때문에 루이 가렐은 내게 잊힐 수 없는 이름으로 남았다. 어쨌든 그 두 배우가 함께 만나고 사랑도 하는 스토리가 흐른다. 그때 나는 혹시 개똥이 있지는 않을까 땅을 보고 있었는데 눈 앞에 자전거 한 대가 스윽 하고 지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얼굴이 스쳐 지났다. 재밌었던 건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긴 그건 영화속이 아니었으니, 나만 그런 환상에 젖어 있는 듯 지냈을지도 모르니. 영화 속 이브는 가스파르 울리엘의 모습으로 표현됐지만, 그렇다면 현실 속 이브는 누구의 손으로 그려지고 만들어진 것이었을까. 또는 누가 디자인한 인물이었을까.



우리나라에서 흔히 입생로랑으로 불리던 그 브랜드는 이제 앞의 Yves를 떼고 생 로랑으로 존재하고 있다. 유럽의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그렇다.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디자이너의 성으로 대표되며 그 이름으로 각인된다. 그러나 영화는, 적어도 내게는 생 로랑이 아닌 이브의 삶을 다룬 영화로 전해졌다. Yves, 그의 열정과 사랑을 담은 영화였다 말해도 과언은 아니기를 빈다. 그러나 그 사이를 맴돌던 쓸쓸함이 그를 고독으로 빠트리지 않았나 하는 걱정도 한다.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그에게 다가가려 한다. 마치 어떠한 말 어떠한 위로라도 전할 듯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니까. 나는 영화라는 환상을 사랑한다. 때로는 그게 너무 답답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오래전에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블로그에 썼을 때 나는 그렇게 말했다.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꼭 봐야 할 영화라고. 천재적인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니라, 될 수 있으면 그런 길은 가지 않게 고민해 보도록 말이다. 물론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디자인한 듯, 그렇게 만들어진 듯 사는 건 어차피 같은 신세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일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조금 다른 말을 하고 싶다. 디자이너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꼭 보기를 말이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 중에는 왜 게이가 많았을까 하고. 알렉산더 맥퀸도 그랬다 하고, 칼 라거펠트나 이브 생 로랑, 그리고 톰 포드까지 수많은 일류 디자이너들이 남자와 사랑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그건 내 알 바 아니지만 때로 이상한 관점에서 그들을 보게 된다. 마치 뒤틀린 생각을 가진 듯 그 모습들에 시선을 두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천재적인 디자이너가 된 것일까.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그런 눈으로 쳐다볼 때, 혹은 삿대짓하고 욕할 때 그때 그들이 느꼈을 감정이 그들을 그 길로 이끈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



패션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에도 마치 그런 것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것이 권력이고 그래서 남자들을 기죽게 한다 느낀 적도 있었다. 남자가 옷에 신경을 쓰고 머리에 신경을 쓰면 남자답다 못하다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미용실을 가지 않은지 이십 년쯤 됐다. 그러나 진정 비겁한 건 그러한 권력에 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남자들이라 생각했다. 왜 싸우지 않고 투쟁하지 않는가.

영화는 이브가 군복을 입은 모습에서부터 시작된다. 내 기억 속 그 영화는 그러한 장면으로 시작됐다. 알제리 전쟁으로 인해 그는 군대로 불려가게 되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이미 쓸쓸했다. 창작이라는 자유는 모두 속박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규율이라는 엄격한 틀 속에서 꿈틀거리는 열정인지도 말이다. 이브가 만든 옷은 훗날 하나의 법칙이 되고, 그렇게 세계 패션은 또 다른 흐름을 맞이했던 것인지 모른다. 그는 군대를 떠나 진정한 싸움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의 삶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일대기에 대해 매우 깊이 들여다본 적도 없었다. 단지 나는 가스파르 울리엘을 보고, 또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의 진가를 느끼게 됐고, 또 루이 가렐을 영화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뿐이었다. 결국 이름으로, 그 모습들로 남는 삶. 디자이너의 삶은 꼭 그들 옷과 같다. 그들이 상상하고 그린 모습, 형태들과 같다. 패션은 허무함만 안길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에 열광하고 하나 집어 들기 위해 달려든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유혹적인 냄새까지 풍기면서.




Saint Laurent, 2015/ Bertrand Bon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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