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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Apr 23. 2023

정치인은 떠나고 돌아온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탈당을 발표하고 귀국하겠다고 했다. 프랑스 파리 3구의 한 사무실에서 기자들을 불러 이와 같이 말했다.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며, 또 기사에 첨부된 사진 두 장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방문 연구교수 같은 자격으로 유럽으로 가고 싶다. 그러한 자격은 어떻게 얻는 것인지도 찾아보려 했다. 한 예로 우리나라 헌법재판연구원에서는 그러한 자격을 두고 있었다. 국내외 대학의 전임강사 이상 또는 이에 상당하는.. 국내외의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 변호사 자격이 있거나 박사학위 또는.. 더 자세한 내용은 헌법재판연구원에서 찾아보기를 바란다.

아무튼 나는 대충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배 아파하지 않는다. 시샘하거나 질투하며 그를 노려보지 않는다. 부러움을 느낄 뿐, 하지만 그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관련 일로 불명예스러운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안철수 의원이 독일에 갔을 때도 나는 그가 부러웠다. 비록 대선 패배의 쓴 맛을 본 뒤 떠나는 것이었지만 그곳에서는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그랬다. 나도 오래전 유럽을 방문, 그리고 연구 같은 것을 했다. 교수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연구원도 아니었지만.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부딪히며 체감했다. 세상은 넓고 도시는 크고, 인간 세계는 그토록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도 때로 참 단순한 논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송영길은 그곳에서 무엇을 연구할까 생각했다. 그러던 중 마크롱 대통령이 초대해 엘리제 궁에도 방문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당의 대표이자 정치인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마크롱은 그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지내시다 어려운 일 있으면 말씀하시라 그 정도 말은 건네지 않았을까. 내가 그곳에 머무를 때 니콜라 사르코지는 나를 알지 못했다. 엘리제 궁을 지키는 경비원들이 그곳 앞을 서성대는 내게 눈길을 한 번 줬을 뿐.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다 허리에 큰 총을 찬 경비원이 나타나 그것을 제지하기도 했고..

그때 나는 초콜렛을 배우겠다고 떠나 그곳에서 사진작가가 되는 꿈을 꿨고, 돌아올 때는 소설을 쓰겠다며 미래를 이야기했다. 두 권의 소설을 완성해낸 지금, 그리고 세 번째 소설을 준비하며 나는 더 먼 곳을 보고 있다. 양산의 한 물류센터에서 일하면서, 그리고 언젠가 꼭 영국으로 가겠다며 지금 현실에서는 현실적이지 않은 꿈을 꾸고 있다. 지금 나는 정치인이 되는 꿈을 꾼다.

어릴 때는 누가 그런 물음을 던지면 나는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마치 객관식 문제에 답하듯 직업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나는 대통령도 과학자도 꿈이 아니었다. 요식업자가 되겠다고도 했고, 그러고 보면 작가가 되겠다고도 하는 등 나는 이야기한 대로 사는 중이다. 물론 편의점 알바를 할지는 몰랐고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찌들어갈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몇 년 전부터는 그런 막연한 꿈을 꾸었던 것이다. 아니, 나도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서로의 심리를 파헤치려 하고 이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꿈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는 송영길 전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김정숙 여사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그들이 그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이야기는 들린다. 마치 그런 소리처럼 들려온다. '나는 그를 만났고 지금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파리에서 나를 만난 프랑스인들도 한 번쯤 나를 떠올리지 않을까. 나는 가끔 그들 생각을 한다. 외로움의 끝에서 비틀거릴 때 내게 손을 내민 사람들과, 또는 나의 주머니에 손대려 했던 집시들마저도.

정치인이 되어 힘이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위로 몰려들게 되고, 그리고 정치를 하라고 여기저기서 많은 지원도 들어온다. 합법적인 지원도 있을 것이고 어두운 거래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진짜 알고 싶은 건 누군가가 검은 돈을 받았냐 그리고 썼냐가 아니다. 그런 일이 세상에 알려질 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또 기자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글을 쓰는지를 본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살핀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한 페이지를 읽는다. 머리가 있고 신을 신은 발이 있는 인간처럼 오늘 하루는 그런 모습이었다. 

전직 당 대표와 같은 사람이 머리를 숙여 정수리를 보일 때는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저 사람은 왜 땅을 보게 되었을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떠날 때만큼이나 많은 생각이 든다. 열 시간을 넘게 그 안에 있어야 하며, 그래서 버틸 수 있을까 혹여 사고는 나지 않을까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꼭 운명 같았다. 나는 그때 돌아올 줄 몰랐지만 돌아와야 했고 그래야만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떠날 때는 그랬다. 정말로 간절히 떠나기를 원했지만 진짜 갈 줄 몰랐고 출국길이 실감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영국으로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웨스트민스터의 거리들을 걸을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사무실 하나를 구할 운명처럼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설렌다. 조그만 방 컴퓨터 앞에 앉아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보고 그것을 업로드할 때의 기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릴 때 나는 사는 것 같았다. 글을 써 내보일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오늘 이런 하루를 살았다, 또는 그런 꿈을 꾼다처럼.

아직도 그때의 일들을 잊지 못한다는 말을. 지독히도 건조했던 파리에서 나는 푸석푸석한 얼굴이 되어 돌아왔다. 매일 같이 냉장고 속에 있는 지금 내 피부는 몰라보게 좋아지는 중이다. 내 꿈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멀고도 먼 곳, 러시아 땅을 지나야 닿을 수 있는 그곳. 지금은 그저 생명 연장을 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또 반쯤 죽어 들어올까. 그러나 무거운 짐 가방 속 커다란 보물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을까. 사람들은 그 가방 속 보물을 만지고 얻기 위해 그가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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