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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Apr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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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건 시간 보내기 아닌가요?"

"그런가요?"


그의 꿈은 좋은 시계를 차는 것이라고 했다. 소매를 걷어올린 그의 팔에는 번쩍거리는 무언가가 없었는데, 그렇다고 피부 위로 여러 갈래의 핏줄이 솟아올라 그 여자를 두근대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손목은 가늘었고 가녀렸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자신은 좋은 시계를 차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자케드로의 사진을 내보이면서 그는 말한다.


"저는 시간 보는 일에 중독됐어요."


그건 어쩌면 강박일지 몰랐다. 음악을 듣는 것도, 컴퓨터 앞에 앉아 야구 중계를 보는 것 역시 자신의 책임이 아닌데 그는 그런 것들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모른다.


"필립 글래스의 음악을 들어보세요. 중독될 거예요."


그는 그 시간 바에 있었고, 맥주를 마셨으며, 그는 옆자리에 앉은 여자를 보며 이야기했다. 그 여자의 얼굴에 자신을 집어넣고 곧 스스로의 얼굴을 보게 된다.


"저는 힘들 때 심수봉의 노래를 들어요. 비나리, 그 노래를 들으면 젖을지도 몰라요."


그 여자는 어린 나이에 자신이 그런 노래를 듣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매일 술을 마시는 일도 부끄러워 않는 듯했고, 그래서 맥주보다 소주 마시기를 즐긴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오뎅탕이랑요."


자신의 아버지가 심수봉 노래를 좋아했다며, 이젠 그 모습조차 떠올려지지 않는 그 얼굴을 그리는 듯했다.


"몇 시죠?"


마칠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보았고 10시 26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 시간 만에 모르는 사이가 된다. 그들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고, 인생은 그런 영화가 아니었나. 로맨스도 그 무엇도 아닌. 그는 자신이 박정희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음에 또 올게요."


그가 그곳을 다시 찾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우산 위로 비가 떨어지면 생각날지도, 그때 그 발걸음은 다시 지하 계단을 내려갈지도. 그리고 허무한 걸음으로 다시 오를지도. 그는 좋은 시계를 사고자 마음 먹는다.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에. 지금 시간은 9시 25분, 그는 그 계단 입구에서 망설이며 발걸음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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