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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Apr 14. 2023

I'm in New York



나는 어릴 때 TV를 봤고, 곧 컴퓨터에 빠져버렸으며 지금은 유튜브가 없으면 살지 못한다. 어느 날 나는 어느 높은 곳에 사는 고독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앤드루 사도우스키였다.


그를 만나기 위해 74층 버튼을 눌렀을 때 내 손가락 끝은 흔들리고 있었다. 또는 땀에 젖은 손바닥인 것을 알아차렸지만 스스로를 초라히 여기지는 않는다. 엘리베이터 안의 카메라는 그런 것까지 담아내지 못하건만, 그럼에도 나는 안다. 그는 돈이 많고 그의 서재는 카사블랑카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한때 알리시아 엠버와 사랑하기도 했으며, 그녀는 그와의 관계를 통해 낳은 아이를 세상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전해진다. 그 마음을 어찌 아는지 모르겠지만, 혹은 스스로 드러내 보인 것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옷을 벗고 사랑하듯 나는 그것이 용기 있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잊히지 않는 모습으로 남는 것,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존재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

그는 나를 잊을까, 나와 사랑을 나눈 뒤에도 그는 내 모습과 형태, 그리고 얼굴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릴까. Backspace 또 Backspace. 그것도 알코올중독과 같은 이상 증세라는 것을, 불안한 마음에 무는 담배 한 개비와 같다는걸. 그리고 Enter. 나는 그 문 앞에 서 있었고 곧 문이 열렸다. 시간이 지난 뒤 나는 그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안경 낀 눈으로, 어두운 밤 속 눈동자와 같은 모습으로.

오른쪽 뺨에는 보조개처럼 보이는 깊은 흉터가 있었고, 그의 오른쪽 어깨는 아래로 처진 모습이었는데 나는 순간 놀랐다. 그러나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상상할 뿐이었다. 그의 고통과 그가 받았을 그 충격을 말이다. 큰 벽돌이었을까, 하늘에서 떨어져 그를 내리친 건 고철 덩어리였을까. 그는 자신이 오른쪽으로 고개 돌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걸 알았고,

"그러니 왼쪽에 있어주시겠어요."

그는 그 투명한 잔을 입에 갖다 댄 뒤 말했다. 내 앞에도 같은 것이 놓였고, 그건 차갑고도 붉은 차였다.

"아름다우시군요."

'그래요, 나는 아름답게 자랐어요.'

나는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과 같이, 아니 가장 아름답고 탐나는 작품과 같은 것으로 존재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알리시아 엠버의 전신을 담은 사진이 그 큰 건물의 벽에 내걸렸듯, 그러나 나는 오직 그의 앞에서만 존재하고 싶었다.

"사랑해요."

그의 왼쪽 팔에 기대 누워 나는 속삭였다. 그의 뺨 깊은 상처는 마치 사라진 듯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그와 사랑을 나누었다.

74층으로부터 나는 내려가야 했고, 그 이야기는 엘리베이터 1층 버튼을 눌렀을 때야 비로소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깊어져가는 밤 차들이 달렸고 이따금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지운 듯 누구도 시선을 주지 않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느 미련한 남자들은 자신은 그런 모습을 사랑한다 말하겠지만. 내 피부에서는 더 이상 좋은 냄새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런 것들로부터 떠나왔기 때문이다. 61번가 거리, 맨해튼. 내가 있었던 곳, 그래서 꿈으로 남은 그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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