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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May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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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감기는 운전자는 이윽고 방향을 돌린다.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곳을 찾아 그는 굽이 치는 골목길을 따라 내려온다. 어느덧 바다가 보였다. 그곳에서 차의 시동은 꺼졌고 그는 벨트를 푼다. 그리고 의자를 뒤로 젖힌다. 다시 눈이 감겼다.

한 시간쯤을 잠든 그는 깨어 창문 밖을 봤다. 여전히 바다가 눈앞에 머무르고 있었다. 푸르고 물결치는,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바다가 분노하던 때가 언제인가 까마득했다. 죽은 물고기들을 토해내던 날이 또 언제였는지. 왜 모든 것은 고요하기만 한 건지.

수진에게서 온 전화였다.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한 거 안 잊었지?"

그는 잊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듯 말했다. 시간을 보았지만, 하지만 아직 세 시간이 남은 것을 알고 안도했다. 그는 입을 떼어내어 말했다.

"뭐 먹고 싶어?"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그날은 여름처럼 더웠고 햇빛 내리쬐어 사람들의 피부를 조금씩 태우고 있었다. 한 여자가 창문 밖으로 지나갔는데 그는 그곳으로 시선을 둔다. 바다에 가까운 땅, 사람들은 왜 그곳으로 떠밀리듯 온 것인지. 그 여자는 마을 사람 같았다. 짧은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었고, 아니면 여행객이었는지 모른다. 곧 어린아이가 그 여자의 뒤를 쫓아 뛰어왔고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바다로 들어갔다.

그들은 술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밥집에서 술을 마셨다. 무엇이 맞는 말인지 모르게 그들은 술과 밥을 함께 먹는다. 그는 왜인지 술잔을 빨리 비웠고 곧 취했다. 너무도 이르게 말이다.

"무슨 일 있어?"

종업원이 들고 가던 컵을 떨어뜨렸고 깨졌다. 쨍그랑 소리가 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

"어떡해!"

스스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는 되돌아보려 했지만 기회를 잃고 만다. 내일도 무슨 일이 있을거야 생각한다. 술에 취하는 건 차라리 습관일지 모른다. 나쁘게 자란 아이처럼, 그러니 나쁜 사람들은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노래 부르러 가자!"

수진은 늘 먼저 말했고, 그는 늘 대답하거나 대꾸하거나 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노래는 트림 같아서, 식후에는 커피를 마시듯, 술을 마신 뒤에는 언제나 그곳으로.



그는 일 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날 바다 앞에 머물렀던 기억을 오래 전 보았던 영화를 다시 감상하듯 어느 장면을 찾는다. 사람들은 삶의 대부분 순간을 잊고 살지만, 그 장면이 그에게는 왜 잊을 수 없던 순간이었는지 그는 알지 못한다. 그때 그는 술을 마셨고, 수진을 만나기 전 바다 앞에 머물렀고, 한 여자와 아이를 봤고 그는 그곳에서 한 시간 전 잠이 들었다. 그는 더 이상 피곤하지 않다. 지나가는 모든 차들과 신호등의 빨간불과 파란불도 분명히 구별해낼 듯 모든 것이 선명하다. 그럴수록 그때의 기억들은 점점 흐려져가는 것을.

그래서 그는 떠올리는 것일지 모른다. 신호등의 불빛을 구분해 내기 위해, 지나가는 자동차와 부딪혀 사고가 나지 않으려 삶의 대부분 순간을 잊는 것이 아니었을까 묻는다. 그래서 수진은 떠난 것이었다. 너와 내가 스친 기억들만을 남긴 채. 오늘도 그 섬에서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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