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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May 08. 2023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1592년 5월 7일 옥포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일본의 함대를 무찔렀다. 그것을 옥포해전이라 한다. 예전부터 난 거제도에 다시 가면 옥포에 가고 싶었다. 그런 역사도 모르고, 그저 프랑스인들이 많고 그들이 찾는 카페와 술집도 있다고 해서 말이다. 그 작은 바람을 어제 이뤘다. 그러나 거제에 도착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를 가리키는 표지판이었다.

"영삼이 집은 여기서 걸어서 못 가는데.."

한 아줌마는 말했다. 그 이름들은 이상하게도 그렇다. 영삼, 명박. 무언가 친근하면서도 막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이름들이다. 재인이 석열이는 약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걸어서 가기 힘들다길래 포기했다. 다시 옥포항 방면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가 그친댔는데 비는 그치지 않고, 여기저기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글자들과 모형 같은 것들이 보였다. 집에서 나오기 전 봤던 기사들이 떠올랐다. 오늘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우리 땅을 밟는 날. 그는 서울로 갔는데 난 마치 엉뚱한 곳으로 온 듯했다. 바다에는 왜군 함대도 보이지 않았고, 웬 러시아인의 이름 같은 것이 적힌 배 한 대가 정박해있을 뿐이었다. 나를 따르는 부하들도 없다. 커피 마시는 사람들과 낚시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괜히 왔나?'

볼 것도 없고, 비에 젖어가는 신발은 발가락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래도 기가 막힌 우연이지 않나. 정치인을 꿈꾸는 자의 눈 앞에 그 유명한 정치인의 이름이 나를 이끌고, 그곳에서는 비도 피할 수 있을 듯했다. 몇 주 전 읽은 글들이 생각났다. 김영삼의 아버지가 멸치로 돈을 많이 벌어서 그는 꽤 유복하게 자랐다는 사실을 난 알고 있었다. 마치 나를 움직이는 손이 있는 것만 같다. 그리로 가라고.

"한 번 앉아보소. 찍어줄게."

생가 옆에는 대통령 기록전시관이 있었고 그곳에는 청와대 집무실 책상 같은 것을 두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마련해놓은 공간이 있었다. 적어도 아흔은 돼 보이는 어르신이 그곳에 앉아 사진을 찍으시는데, 이젠 진짜 대통령이 되는 꿈도 더 멀어지신 것 같은데, 그래도 그곳에 한 번 앉아 보고 싶으신 걸까 생각했다. 나는 앉지 않기로 했다. 사진도 찍지 않기로 하고 말이다. 왜인지 그럴 것 같아서.



'여기서 택시가 잡히겠나?'

막상 다 보고 나오니 밥 먹으러 갈 일이 막막했다. 마을 횟집에 가기에는 점심이라 부담스러웠고, 옥포 시내에 괜찮아 보이는 밥집이 몇 군데 있었는데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다닌다고 했다. 핸드폰 데이터를 켜 버스들이 어디에 있나 확인해 보아도 소용없다. 이러든 저러든 마찬가지다. 올 버스는 오고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으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대통령이 되겠나?'

며칠 전 나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영국 왕조도 백 년이 넘게 바뀌지 않고 있다고 말이다. 멸치를 잡을까, 그러면 내 자식이 공부를 열심히 해 대통령이 될까. 마치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쓰고 만드는 것 같다. 꼭 그런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듯, 그렇게 누군가는 좌절하고 고개 떨어뜨린다.

"맞아요! 십분 뒤에 와요!"

처음에는 그냥 마을 주민인 줄 알았는데, 한 젊은 남자가 버스 정류장으로 와 십분 뒤에 버스가 도착한다고 했다.

"여기 버스가 한 시간 마다 다닙니까?"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바다에서 나는 것들에 대해 말했고, 그는 불쑥 핸드폰을 꺼내 들며 자신이 잡은 해삼 사진들을 내게 보여줬다.

"맞아요! 저 잘 잡아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듯했다. 아니면 거제도 사람들 말하는 게 원래 이런가 헷갈렸다.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려 잘 구분되지 않았다. 그 눈은 맑고 순수했다.

"삼촌! 다음에 꼭 우리 마을에 놀러 와요!"

"마을에 펜션 있죠?"

"맞아요! 펜션 있어요!"

옥포로 돌아왔다. 볼 것 없는 옥포, 그래도 맛있는 빵을 파는 카페가 있는 곳.

큰 배들이 바다 위에 떠 있거나 머물러있는 곳. 세상은 많이 변한 듯했다. 나는 꼭 이순신의 과거를 아는 것만 같다. 그처럼 피 흘리고 눈물 떨어뜨린 적이 있는 듯, 그래서 그 풍경이 너무도 허무한 평화로움으로 다가왔다.

맛있는 자반 고등어를 파는 식당이 있는 곳, 가자미는 수입산. 거제도 앞바다에서 잡히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시지 반찬이 맛있던 그 식당.

수많은 언덕과 고개를 넘으면 또 바다가 보이는 곳. 거제도의 풍경은 그랬다. 작은 섬들이 흩어져있고, 그리고 옛날부터 펜션이 많던 섬. 또 누가 쳐들어올까 그런 것일까. 모두 자신을 이순신이라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그는 그런 장군이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겼던 것인지도.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아직도 그곳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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