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를 만나다 1부

episode 8

by 문윤범


프랑스에서 처음 빵을 먹었던 것이 생각난다. 집 근처에 있던 동네 빵집이었는데 그 기억이 별로 좋지는 않다. 쌀쌀 맞았던 종업원의 표정과 행동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집으로 돌아와 맛본 빵의 맛은 훌륭하다 느낄만한 것이었다. 포근하고 아늑했다. 내 입이 마치 이불 속에 있는 듯한, 아니 이불이 내 입 속에 있는 듯한.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춥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 빵의 이름은 Croissant aux amandes, 아몬드 크루아상이었다.

Patrick Roger가 왜 아몬드 반죽의 맛에 공을 들였는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아몬드 크루아상에는 기본적으로 빵 위에 슬라이스한 아몬드가 뿌려지지만 빵 속을 채우는 아몬드 반죽, 크림의 맛도 중요했다. Chausson aux pommes, 애플파이에서도 사과 크림의 맛이 중요하듯 말이다. 딱히 다른 빵을 시도할 필요도 없다 느꼈다. 프랑스에 3년 있는 동안 주로 먹은 빵은 아몬드 크루아상이었다. 대신에 아주 많은 빵집에서 그 빵을 맛봤다. 기본적으로는 모두 같다. 하지만 모두 같은 맛은 아니었다. 그건 마치 질서정연한 자유와도 같았다.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건 결코 같을 수 없었다.

기본적인 레시피를 따르고 지키는 모습에서 프랑스빵의 깊이와 수준을 알 수 있었다. 누구보다 개성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으로서 이게 모순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난 축구나 야구의 규칙이 바뀌기를 원하지 않는다. 도시의 질서가 파괴되기를 바라지는 않는 것처럼.

언젠가 그 빵집에서 아몬드 타르트를 한 번 맛보고는 가장 좋아하는 빵의 순위가 조금 바뀐 것 같은데, 아무튼 쌀쌀맞았던 그 종업원과도 나중에는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아몬드 타르트를 샀던 날은 그녀가 내게 가장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 날이기도 했다. 그녀는 항상 그 시간대에 일했다. 해가 저물 무렵에 만난 아랍의 여자.


처음 간 레스토랑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잊어버릴 수 없다. Rue Montorgueil에 있는 식당이었다. Le Compas d'Or였다. 그 거리는 파리에서 꽤나 유명했다. 멋있는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이 거리를 걸어 다니는 곳이었다. 그 거리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모습을 봤다. 안 보는 척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레스토랑, 카페테라스에 앉은 사람들의 모습과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나는 그게 파리다운 모습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서로를 보며 욕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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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프랑스 친구를 사귀게 되면 그곳에서 음식을 먹고 술을 한 번 마시고 싶었다. 친구를 사귀었다. 그리고 약속을 잡게 되었다. 내가 Rue Montorgueil에서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친구는 자기가 레스토랑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Mémère Paulette라는 가게의 음식이 괜찮을 것 같다며 그곳을 추천했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한 난 레스토랑이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확인했다. 우린 3호선 Sentier 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고 약속 시간이 되어 친구는 도착했다. 확인해두었던 동선대로 친구를 레스토랑 앞으로까지 안내했다. 친구는 그런 내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자리가 없어 그곳에서 저녁을 먹지는 못했다. 다시 나와 걸었다.

무작정 어디론가 들어가야 했는데 마침 손님이 뜸한 가게가 하나 보였다. Le Compas d'Or였다. 나는 그 레스토랑의 이름을 잊지 못하게 될 줄 몰랐다.

친구의 친구들도 하나둘씩 모였고 어느새 자리는 떠들썩해져 갔다. 한국에 러브호텔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한 친구의 말에 그 단어를 노보텔로 잘못 알아들은 난 내가 살던 곳에는 한 군데 밖에 없었는데 하며 엉뚱한 대답을 했다. 해운대에 하나 있었다. 축구로 주제를 옮겨 가 카림 벤제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알제리 이민자 출신의 친구가 카림이 아니라 꺄힘이라며 내 발음을 고쳐 말해줬다. 그 친구와 나는 밖으로 나와 담배 한 대 씩을 태웠다. 지네딘 지단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봤다. 내가 그들 사이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Rue Montorgueil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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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처음 레스토랑에서 프랑스의 와인을 맛봤는데 어떤 와인을 마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검 붉은색이었다는 점과,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맛을 가진 술이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자연스러운 연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를 알게 될 줄 몰랐고, 그 친구의 친구들도 알게 될 줄 몰랐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자란 내가 자신들의 나라로 오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뜻밖이었다. 때때로 감동이 되기도 하고, 때론 모든 것이 무기력해지기도 하는 존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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