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윤범 May 21. 2023

프랑스 여자들에게 배운 것



미대생이 꿈이었던 내게 미대에 다닐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건 바로 베르사유 미대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보자르라고 불리는, Beaux-arts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도 찾아왔다. 그곳은 한국인 학생들의 수가 적지 않았고 여러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알게 된 곳이었다. 우선은 입학 관문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술의 '미'자도 알지 못했던, 그저 그러한 세계를 경험해보기를 원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그리고 비자 문제가 있었다. 나는 그동안 찍어놓은 사진들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고 면접을 봤다. 결국 난 그 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한다. 그러나 내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찾아온 시기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되려 그 시기를 오랫동안 기억하려 난 노력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잊을 수 없고, 면접 때 만난 교수는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내게 압박감을 주었고 수업 때도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하며 내 안에 잠재해 있는 무언가를 흔들어댔다. 아니, 나는 그렇게 압박당하고 싶었던 건지 모른다.

첫 데생 수업 시간에 만난 교수는 그 교수와는 또 달랐다. 학생들의 행위에 깊이 관여하려는 스타일도 아니었던 것 같고 무언가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멋있었다. 나는 그 교수에게서도 무언가를 얻고 싶었는데, 그러고 싶었는지 하얀 종이 앞에서 막막해하며 한 시간 정도를 보냈다. 그리고 교수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디테일부터 하려고 하지 마! 크게 한 번 보렴!"

그 한마디는 내 인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뭘 하려고 해도 시작을 못하던 나였는데, 나는 그렇게 중요한 힌트를 얻게 된다. 예를 들면 그런 것이다. 내가 소설가가 되겠다고 하면 한 인물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데에만 몇 십분을 잡아먹지 말고 일단 그를 어딘가에 던져 놓고 움직이게 하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디테일들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나는 그 교수에게서 정답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내게 필요했던 한마디를 스스로 이끌어낸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셰익스피어 책방에 갔고 그곳에서 한 일본 여자를 보고는 스토리 하나가 떠올랐다. 히로시마에서 온 여자가 미국 남자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했다. 첫 날 첫 페이지에 주인공 여자의 아버지까지 등장시키는 등 큰 기둥 하나를 세웠다. 그때 난 알렉스라는 이름의 미국 남자를 만나고 그의 외모에 반해 있었을 때다. 미대를 그만두고 나온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건 그 교수의 그 한마디와,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 관심을 가지며 대했던 그 교수의 열정과 노력이었다. 그곳에서 내겐 두 명의 큰 스승이 있었다. 모두 프랑스 여자들이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닌 나는 그들에게서 강한 힘 같은 것을 느꼈고 배웠다.

파리와 그 근교에는 많은 좋은 미술 학교들이 있었지만 나는 베르사유 미대에 간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경험을 했고 새로운 기분들을 느끼게 됐다. 예술의 우아함보다 고통을 짐작했고 스스로를 그 속으로 빠뜨리고도 싶었다. 그 교수들은 모두 청바지를 입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들은 그렇다. 그들 역시 노동자였던 것이고 우리는 일하고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얻었다.

예술가들은 늘 그런 식으로 치부되고는 한다. 혼자만의 거대한 세계에 사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혼자 싸우며 이기고 지는 미련한 인간들로 보는 시선도 있다 느낀다. 그러나 나는 늘 거대한 세상과 싸워왔으며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크고 작은 상처도 입었다. 나는 싸우는 게 두렵지 않다. 지는 것도 말이다. 이기는 생각만 해도 모자란데 그럴 여유는 없다. 그러나 늘 그 모든 것을 홀로 버티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외로운 사람이 외로운 사람들에게, 혹은 그 반대로. 그 어떤 창조적인 일도 일상의 평범함 없이는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다. 길을 걷다 나무에 기대듯, 어느 날 나는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리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주차장 한편에서 쉬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 장면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예술이 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비상선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