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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Jun 02. 2023

The Car



내 사는 곳은 장전지하철역에서 금정산 방향으로 15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있는 곳이었는데, 지금 내 집은 16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곳으로 옮겨졌다. 조금 더 부산대 쪽으로 이동했고 집을 나와 매일 같이 걷는 길이 달라졌다. 집 옆에는 생긴 지 얼마 안된 어느덧 유명해진 에스프레소 집이 있고, 그곳에서 난 그리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매일 같이 대학생들을 마주친다. 그들은 늦은 밤까지 잠 자지 않고 새벽까지 돌아다닌다. 나는 밤에 출근해 새벽에 일해 그 습성을 이해한다.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니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다. 오늘 하루는 그토록 길었음에도 하루의 끝은 너무도 빠른 속력으로 달려온다. 그 어둠에 먹혀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사람들은 누군가를 곁에 둔 채 그리고 술을 마시며 달래려는 것인지 모른다. 겁먹지 않으려고 그러는지도 모른다.


영국의 한 뉴스에서 방송 사고를 낸 어린아이는 어느덧 자라 초등학생이 되었는데 아빠와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을 본다. 유모차에 타고 있던 아이는 유치원을 다니고 어느 날 아침, 역시 아빠의 손을 잡고 간다. 일어남에 사투를 벌였는지 두 남자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눈을 비비며 걸었다. 어린이집 앞에는 아이를 맡기기 위해 몰려든 부모의 차들이 줄지어 서 있고 내 하루는 그리 끝나간다. 낮에 잠들어 좋은 건 그 시간이 내게는 너무도 평화로운 것.


엉뚱한 추진력으로 다른 곳으로 향하는 탐사선이 마치 지나온 내 나날들을 구경시켜 주는 기분이다. 그리고 미래도 보게 한다. 나는 분명 다른 세계로 감을 짐작한다. 그러나 도중 허무함도 느낀다. 열차와 버스는 떠났고, 나는 그것조차 붙잡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신세라는 것을. 마주 오며 스치는 사람들을 지나친다.


다시 캠퍼스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뜻없는 담배 한 개비를 없애려고, 잠시 멍한 눈으로 있으려 기어이 또 다리에 힘을 준다. 그곳 땅으로부터 풀들이 자랐는데 그 신비로움은 설명할 길 없다. 나와는 상관 없는 것들, 아무렇게나 자라 존재해 아무 의미없는 것이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어쩌면 그곳에 도착한 것인지도.


내가 어디서부터 떠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제였는지, 아니면 내일인지. 오늘 일어난 사건 사고는 내 두 눈을 사로 잡고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원한다. 혼자만의 드라이브를 즐기고 싶은 마음 뿐,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떠날 한 대의 차가 그리울 뿐.



https://youtu.be/GsPq9mzFN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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