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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Jun 18. 2023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 연극으로 봐 또 영화로 봐서 잘 알고 있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때부터 난 그 제목에 이끌렸던 것인지 모른다. 그런 소설이 있다는 것도 그런 작가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그땐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건 이문열의 작품이었다. 중학교 땐가 학교에서 단체로 연극 관람을 했고 그때 그 제목, 이름을 처음 접했다. 아니면 영화를 통해 엄석대라는 이름 세 글자가 뇌리에 박혔는지도 말이다. 지금 떠올리면 그렇다. 그 제목은 우리들, 그리고 일그러진이라는 두 단어 조합으로 사람들 눈을 끌어 당겼는지도. ㄷ과 ㄱ이 한 칸 떨어진 채로, 또 ㅡ ㄹ, ㅣ ㄹ 가 연결되며 하나의 특징적인 음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영웅이라는 글자에서 ㅇ이라는 첫 두 모음이 모두 모인다. 그림처럼, 글자도 하나의 예술이 되기를 꿈꾸며 그들은 그러한 창조를 했는지도.

물건을 쌓을 때도, 색깔을 맞춰 옷을 입으려는 의도처럼 사람들은 무언가를 창조해내려 한다. 엄석대는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회자되고는 하는 인물이다. 특히 공부 좀 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다. 나는 늘 어떠한 현상에 주목하고는 했다. 왜 그런 글자들이 모였는지 말이다. 그가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얼마나 완성도 높은 글들로 엮어내었는지 보다 나는 그런 것에 이끌렸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면 복도에서 창문 밖을 봤고, 수업 시간에는 책보다 칠판보다 선생님의 행동, 모습을 관찰하고 반 아이들이 딴짓 하는 짓을 목격하고는 했다. 잊히지 않는 건 선생들의 말투와 표정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의 특성 같은 것들이었다. 그곳에는 언제나 엄석대 같은 아이가 한 명 있었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다. 혹은 시기하는 아이도 있다. 

나는 늘 찬성도 반대도 아니었던 것 같다. 늘 반대하고자 했지만 드러내지 못했다. 용기 내 다가가면 조용히 한마디를 할 뿐이었다. 내 학교생활은 그랬다. 그렇게 반쯤 죽은 듯 지내며 뭐든 되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짓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여행도 했다. 여행을 하고 남는 것은 글과 사진뿐이었다. 또는 아름다운 추억들뿐이었다.

그 아름다운 것이야말로 뒤틀리고 왜곡된 기억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영웅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목격하고 싶어한다. 자신이 그 자리에 섰을 때 우리는 훌륭한 리더가 될까. 수많은 압박과 압력 속에 우리 얼굴은 얇은 쇳조각처럼 구겨질지 모른다. 그래서 난 차라리 플라스틱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이문열은 내가 늘 선망해온 작가다. 그러한 꿈은 내게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내가 쓰는 글이었다. 내 영웅은 또한 최영미이기도 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큰 영향을 받았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의문인 건 '상실의 시대' 책 제목이 원래대로 '노르웨이의 숲'이었다면 우리나라에서 잘 팔렸을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것 또한 미스터리라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내보여질 때 표지는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얼굴보다 개성이 더 중요한 시대이며 이름의 뜻도 마케팅에 의해 깊고 얕음이 정해질 수 있다. 한 명의 글 쓰는 사람으로 그래도 잊지 못할 추억은 그렇게 이어져온 이야기다. 나는 내 글이 전기선과 배관, 혹은 숨겨진 좁은 길 같다 느끼고는 한다. 누군가는 그럴듯한 조형물들을 세워 사람들 시선을 이끈다 생각하면서 말이다. 도시는 늘 그랬다. 자연은 늘 멀고 가까이에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일 뿐이었다. 영웅은 과연 존재했고 존재하는가. 그가 가진 힘은 결국 반 아이들 군중에 의해 스스로 그 힘을 잃고야 말 텐데 말이다.


https://tv.naver.com/v/20729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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