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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Jul 03. 2023

'Possession'



이자벨 아자니는 예쁘기만한 배우가 아니었다.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의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그 여자를 닮은 여자를 찾는 대회까지 있었다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 문화나 유럽 문화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연기까지 소화해냈기에 그런 배우가 된 것이 아닐까. 그 아름다움이란 결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괴물과 사랑을 나누는 캐릭터이자, 베를린 지하철 역에서의 연기는 영화 역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남았다. 보기 역겨울 정도의 광기 어린 연기를 하면서도 미모를 살려냈다. 배우는 영화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영화 또한 그렇다. 그런 얼굴들, 그런 미모들이 있어야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다. 나는 '포제션'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든 감독을 존경하게 됐다. 그는 절대로 그런 배우 없이 그런 영화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이자벨 아자니는 미모의 프랑스 여배우이자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한 명의 인간이라고. 그러한 과정을 보게 된 것은 한참이나 자라 어른이 되어서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의 생명체였다. 아직까지 살아 존재하는 말이다. 어떤 영화를 보면 심장이 뛰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태어나 그런 감정을 경험하게 한 영화는 몇 없었다. 이 영화는 내 인생 최고의 영화로 꼽는 작품이다. 무조건 미친 짓을 해 예술인 것은 아니었다. 한 명의 영화감독이 겪은 고통이 필름 속에 고스란히 담겼고 한 여배우의 인내와 노력이 담긴 영화이기도 했다. 남자배우 또한 그랬다. 그들은 이 영화를 찍고 모두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 전해진다. 그러나 단순히도 촬영 방식이나 구도가 압도적인 영화이기도 했다.


사랑이란 남녀를 짝 짓게 하고 새로운 탄생을 이루어내지만 그토록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들이 겁이 나 사랑을 하지 않으려는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하나가 되고, 또 다른 하나를 낳고, 그러나 나는 내 안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교배시켜 괴물을 창조해내려는 듯했다. 한때 나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지만 이제는 지난 날의 이야기만 같다. 사람들에 공감을 얻고 싶어하고 그들이 이해할 만한 소재를 찾으려는 듯도 하다. 가끔 그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리면, 또는 어디선가 그 장면들을 마주치면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 속 두 남녀는 결혼한 사이이지만 관계가 소홀해지고 사랑도 힘을 잃는다. 남편이 먼 곳에서 일을 끝내고 온 사이 여자는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뒤를 쫓고 그 대상을 추적한다. 그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존재이며 곧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차라리 현실과도 같은 일들이 말이다. 남녀의 사랑은 단순히 서로의 치부를 볼 뿐이지만 자기 자신과의 사랑은 내면의 괴물 같은 존재도 만나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빛도 보지 못하는 곳에 서식하는 생명체는 그 형체조자 짐작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괴물을 본 적은 없다. 그 얼굴을 그 모습을. 이자벨 아자니는 그러한 존재를 만나고 사랑하는 연기를 했다. 자신의 아들도 돌보지 않고 가정을 내팽개친 채로. 남편 또한 아내의 뒤를 쫓느라 아이와 가정에는 무관심해진다.


그들이 아인슈타인 카페에서 만났을 때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이미 예고되었던 잠재해있던 분위기들이 끌어오르고 폭발하며 서로를 찾고 피하려는 두 남녀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래도 나름의 전개는 있었던 것이고 베를린의 풍경들 역시 시간이 갈수록 더욱 다채롭게 표현된다. 흔한 골목과 술집마저도 알 수 없는 기운에 휩싸이며 신비롭게만 보인다. 당시에는 장벽을 기준으로 동과 서로 나뉘고 그런 식으로 갈라진 독일이었기에 그런 연출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 우크라이나인 감독이 그 도시에서 영화를 찍게 된 것이 마치 운명인 것만 같았다.



은밀함을 넘은 세계에는 자신도 목격하지 못한 이상한 물체가 존재한다. 나도 그걸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두 글자가 없으면 그것은 마주칠래야 마주칠 수 없을 것이다. 그 사랑이라는 게 치열한 애정행각으로 이어지듯 사람들은 도시는 모두 순수하지 않다. 자연은 그토록 애틋하지만은 않다. 나는 그런 용기 있는 고백에 이끌린다. 나는 당신을 정말로 사랑하지 않았듯, 누군가가 자신을 그토록 깊이 아껴줄 희망으로 일생을 허비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 안의 사랑마저 부정하고 의심하게 된다. 이 영화가 남긴 교훈 같은 것은 없었다. 또렷이 남은 것은 오로지 이자벨 아자니의 얼굴과 연기뿐이었다. 아직 살아남은 이유처럼,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못다 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뿐이다.


Possession, 1981/ Andrzej Zulaw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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