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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Jul 19. 2023

영화관을 나와..



20대 때 한 외국인이 내게 물었다. 비가 내리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자를 죽인다, 그 영화를 아냐고. 그 여자가 내게 그 영화를 설명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영어를 잘 하지 못했고 그는 아주 단순한 단어들로 표현했다. Memories of Murder, '살인의 추억'이었다. 그때까지도 외국인들은 봉준호라는 이름은 알지 못했다. 단, 그 영화에 대한 소문은 점차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20대 때 그런 영화를 접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조디 포스터와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양들의 침묵'에 명백히 영향을 받은 영화였고 감독 또한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괴물'에서는 양들의 침묵에 출연한 조연배우가 등장하기도 했으며, 그러나 한국적이었고 결코 그 영화에 뒤지지 않는 작품성을 갖춘 영화가 되어 나왔다. 서로 살아온 시대가 다르기에 내게는 그 영화가 더 기억에 남는 작품일지 모른다.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그리고 박해일의 선한 눈망울.



수사밥을 먹으며 저 두 남자 중 누가 강간범인지를 알아맞힌다며 눈을 부릅 뜨는 형사, 그리고 서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형사와 결국 한쪽 다리를 잃고 마는 거친 형사. 

80년대의 한국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평가받으며 또한 앞으로 펼쳐질 한국 영화 전성시대를 예고한 작품이기도 했다. 그는 기어이 깐느와 오스카에서 최고의 상을 거머쥐는 영광을 누리고야 만다.

사람의 목숨마저 앗아가는 장마철을 지나며 왜 이리도 비가 많이 내리는지 묻는다. 더욱 거센 빗줄기로 답하는 듯했다. 그러나 어떤 언어나 영상으로도 표현되지 않는 것이었다. 영화를 만들고, 어떠한 글자들로 그러한 이야기를 하려는 뜻이기도 하다. 왜 어두운 밤 논두렁 풀들 사이에 숨어 우산을 든 여자를 노리는지.

감독의 완벽을 추구하는 편집과 구성은 영화를 최고의 지점으로 이끄는 듯했다. 그럼에도 실화가 가진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가장 비정상적이고 괴이한 일 중 하나였기에 사람들은 몰입했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왜 그토록 호응할까 흥미로웠다. 물론 잘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해도 넘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그건 미국이나 유럽 사회를 향한 우리의 도전이기도 했고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영화를 만들 줄 안다는 것을 넘어 꽤나 날카로운 위협이었던지 모른다. 이제는 그들도 김기영을 알고 그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물론 마틴 스코세이지 같은 사람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지만.



그리고 송강호의 연기가 대단히 재밌다는 것은 그들도 느끼는 것이었다. 틸다 스윈튼이 그토록 그의 팬임을 자처하는 이유였던 것이다. 그 억양 그 뉘앙스들까지 그들이 아는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는 이제 그런 연기를 잘 하지 않는다. 어쩌면 더 진화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그의 연기가 너무도 재미있어 그런 것이기도 했다. 현실에서는 대한민국 사회에 아직도 그런 남자들이 많이 있다. 그런 것이 나는 그립기도 했다.

영화 초반부 사건 현장에서의 롱테이크 씬은 지금까지도 떠올려지는 것이다. 그 그림은 잊히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었고, 마지막 장면은 영화 역사의 명장면 중 하나로 남았다. 여러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었지만 감독과 배우들이 추구한 이상이 표현된 것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건 국가들 간의 문화적 수준 차이를 넘어 어떠한 사람들의 열정,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반했던 것이 아닐까.

이 이야기는 한 편의 한국 영화에 대한 편애가 아니며 그저 자부심 같은 것이기도 하다. 내가 유럽에 있을 때는 그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쩌다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면 그 진심을 알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당신은 왜 그 영화를 보았고 어쩌다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가.



나는 어쩌다 왜 그 영화를 접하게 됐고 다시 그 시절을 떠올리는가. 내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나날들이었기에 그랬다. 영화 속 수없는 컷들이 눈앞에서 나열될 때 나는 그저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영화가 주는 한 시간 두 시간의 기쁨. 그리고 영화관을 나와 걷는다.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영화는 이 사회의 아픔과 슬픔을 다루고는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과 아픔은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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