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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Jul 13. 2023

안 박사의 크록스



그 구멍 뚤린 신발은 의사들이 많이 신는 신이다. 어느 날 병원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의 발을 봤다. 양말에 가려져 있었고, 구멍이 뚫리기는 했지만 흰 양말이 보이는 신을 신었음에도 나는 봤다. 그 걸음을.

그 발걸음은 권위를 향해 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커다란 힘을 손에 쥘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며 나는 그 손의 힘을 빌렸다. 크고 작은 병이 내 몸에 머물렀다 갔고 나는 그에게 의지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멀쩡했고 나는 그렇게 잊었다. 의지하고 기댄 기억들을. 마치 잊은 듯 홀가분해졌고 스스로 일어설 힘을 얻은 듯했다. 신을 신는다. 그리고 걷는다. 거의 모든 인간들이 가진 재능이라면 걷는 것일지 모른다. 안 박사는 급기야 마라톤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나라에서 대통령이 된 사람 중에 의사는 없었다. 그들은 정치를 공부했거나 군인이었거나, 아니면 변호사이거나 검사였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제 부모들이 더 원하는 내 자식은 의사이며 그런 그들이 정치인이 되고 대통령이 되기를 꿈꾼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직 그를 원하지 않는다. 안 박사가 크록스를 신고 돌아다니기라도 하면 생각이 바뀔까. 우리 앞에 서면, 그리고 소리 높여 말하면.

나는 한때 그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 무척 실망했다. 우리 엄마가 늘 하는 이야기처럼, 그는 그저 그런 위치에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기에 그런 것일까. 포기하며 사는 것이 익숙해진 지금 나는 그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현실마저 받아들이려 하고 그것이 슬픈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역사는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으면 읽힐 수 없는 책과 같기에 더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건 나쁜 생각들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바이러스를 추적한 과정에 감명 받아 그를 지지했다. 나도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어 그랬다. 모든 병의 치료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시작을 쫓듯 처음 그를 만난 장소로 돌아가야 함을 알았기에. 그 시간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처음 그 신발을 어디에서 처음 보았나 떠올렸다. 길을 지나다 예쁜 딱지들을 붙인 신발을 보며 나도 어릴 때는 정장에 딱지 같은 것을 하나 붙이고 다녔는데,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다 그런 짓까지 하게 되었을까 뒤돌아보았던 것이다. 걷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만으로는 그 병을 치료할 수 없다. 대통령도 의사도, 모든 직업은 그렇다. 지식도 기술도 필요 없으며, 아니 그 시작은 그랬다. 오로지 그것이 되고자 하는 꿈만이 당신을 그곳으로까지 닿게 할 것이라고.

안 박사의 크록스가 보고 싶다. 그가 그 신을 신고 걸어다니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처음 그 신발을 본 것은 병원이었다. 아니면 그 신발에 인상을 받은 기억은 처음 그곳이었던지. 의술은 내게 힘이 되었고 나는 그들에 의지했다. 그러나 곧 잊어버린다. 많은 것을 잃어 잊는 것이 익숙해진 지금 나는 되려 더 큰 꿈을 꾼다. 그의 딸도 박사이지 않나 하며.

나는 바이러스에 맞서 싸워야 하며 그 의지는 여전히 꺾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착각한다. 그건 병이 아니라 꿈이었다는 것을 잊는 듯했다. 오늘 날아온 이메일 속에 바이러스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그 꿈을 포기하면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생각을 지우지 않으려 새로운 코드를 입력한다.


https://youtu.be/I4pezRt9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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