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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Sep 04. 2023

난 그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2000년대에 등장한 한국의 권위 있는 영화들은 일본의 도움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코 과한 말은 아니었다. 이 나라 영화는 여전히 그들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그들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일본인이 만든 좋은 음악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일본 만화 이야기의 설정을 가져와 쓴 '올드보이'도 있었다. '살인의 추억', '달콤한 인생' 메인 테마곡들은 여전히 내가 그 영화들을 그릴 때 떠올리는 음악들. 그리고 김윤아가 부른 '봄날은 간다'는 마츠토야 유미라는 일본의 국민 가수가 작곡해서 준 곡이었다.

특히 그 영화를 사랑한 나였다. 내 정신을 이끈 건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 영화였다 생각하면서도 마음 속에는 늘 그 영화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랑이 하고파서가 아니라, 나도 언젠가 그런 사랑을 하게 될 것 같았기에. 이영애가 너무 예뻐서라기보다, 나 역시 그런 꿈을 쫓았을지 몰라서.

시간이 흘러 그 모습을 보니 일본 영화 '러브레터'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짧은 머리스타일과, 고개를 크게 뒤로 젖힌 그 여자의 모습은 유지태의 키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 일본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그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 나라에서는 일본 영화를 볼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일본에서 온 구질구질한 옷들이 인기를 끌어 지금의 우리 문화는 크게 변했는지 모른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걸 영향이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로 결론 지었다. 위로 받을 것이 부족했기에. 영국이나 미국의 음악들이 없었어도 나는 그 위태로운 청소년기를 버텨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 영화 한 편 때문에 나는 삼척으로 갔고 동해로 갔다. 그런 산골짜기 깊은 절에도, 또 겨울의 시린 바람이 불어대는 쓸쓸한 바다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영화가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사랑이라는 꿈을 꿨다. 지금은 그것을 반쯤 포기한 듯, 이 나라에 별 도움도 되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지만. 혼자 있어 느끼지 않아도 되는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대신 나는 더 위대한 일을 한다는 이유로 당당해지려 했다. 나도 아들을 낳고 딸을 낳는다. 대신에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일을 직업으로 생각하지는 않기로 한다.



어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의 가는 팔을 보고는 마음이 흔들렸다. 나이가 좀 어린 것 같아 죄라 생각하며 고개 돌린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 죄인 걸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대사는 한때 유행어였다. 이별이란 그 죄로부터 멀어지는 일이었던 것인지..

이 나라는 여전히 일본의 영향 아래에 있다 믿었다. 어쩌면 거쳐야만 하는 과정일지 몰랐다. 내가 왜 일본인이 하는 짓들을 좋아해서는 안되는가, 그런 물음을 던진다. 다만 나는 달라질 리 없는 한국인이었을 뿐. 훔치려 해서는 안 되는 것.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모두 그 이야기 설정을, 그런 음악을 만든 손을 돈을 주고 샀다.



나는 유지태를 빌려 그런 사랑을 꿈꿨는지 모른다. 이별이라는 현실이 너무도 두려웠지만 그런 대상도 그려보고는 했다. 아직 마주치지 않은 것일지도.. 제주도에서 남자 다섯이서 영화 '외출'을 보고는 이런 짓은 다시는 하지 말자 다짐했다.

사랑이란 정말 위대한 것인지.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며 나는 느꼈다. 어떤 위대한 일도 하루 작은 일들마저 포기하며 살게 할 수는 없다고. 두 남녀는 함께 밥을 먹고 길을 걷는다. 가장 좋았던 장면들은 그런 것이었다. 강화순 할머니 댁에서 밥을 먹는 장면과 길에 서 있던 두 배우의 모습들이었다. 그것이 삶이라면 나는 거부할 권리가 없다. 결코 그런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내게는 무엇도 선택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권위를 만드는 건 힘, 언제나 권력으로 자랄 여지 있는 보호 받아야 할 힘이다. 자연으로부터 나는 권위 없음을. 그곳 강원도에서 느낀 건 추위를 이기고 버텨내기 위해서는 보다 두꺼운 외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신념이 되는 것만 같아, 그래서 위험해지는 걸 느낀다. 더욱 쓸쓸해지고 혹독해지는 것만 같다. 봄이 올까라는 의심으로부터 겨울은 다시 오고야 만다는 결론으로. 

나는 이와이 슌지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https://youtu.be/vf6TWmxJZxY?si=9U3ewxHg4Oi6PR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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