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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Sep 09. 2023

임을 위한 행진곡

https://youtu.be/SuXlZ5PHK9I?si=-tTGiO5BFgtEIaUN



그를 좋아하는 건 그 기준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나는 가는 얼굴의 여자를 좋아했고, 조금은 독하게 생긴 그런 분위기를 좋아했기에..

내 시선 속 그 여자는 얼굴이 둥글었고 무섭게 생기지도 않았다.  그는 어쩌면 내 우상 중 하나였는지 모른다. 영화배우는 그래야 한다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나 감히 다가갈 수 없고 말을 걸 수 없는 분위기여야 했다.


4월의 어느 날 난 사랑에 빠졌고, 마치 그를 잊은 듯 힘차게 걸어나갔다. 함께 선 동지들과 노래를 불렀고 뛰어나갔다. 최루탄이 날아오며 곧 기억을 잃는다. 4월의 사랑도, 그곳에 영원히 멈춰 있을 추억들도 잊는다. 나는 꿈을 꾸었던 것인지도.


임수정, 그는 과연 최고의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던가. 지금껏 압도적 캐릭터를 남긴 작품이 그에게는 없었던 것 같다. '장화, 홍련'은 정말 재미있었고 작품성이 뛰어난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난 그런 장르에 흥미가 없었다. '...ing'라는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최고로 기억될 만한 모습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난 그를 그 정도의 위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매력적이고 예쁘고, 뛰어난 연기자라고 생각했다. 그 뭉글한 분위기 또한 마음에 들었다. 그럼에도 최고는 아니었다.


깨어나 눈을 떴을 때 난 하얀 천장을 봤고 곧 밤이 찾아왔다. 사이렌 소리가 울려 다시 잠에서 깼을 때는 어떤 가슴에 안겨 있었다. 내 아버지의 머리가 하얗게 셀 만큼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난 그 모든 기억을 잊은 듯했고, 오래 전 헤어진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신호등 기둥 뒤로 몸을 감추려 했던 것이다. 차 안에 탄 그 여자의 얼굴을 봤다. 뒷좌석에 앉아 창문 밖 어딘가를 보고 있었고 창문은 곧 스스륵 올라간다. 길거리에선 항의의 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이 싸우고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혼동했다. 그 모든 과거와 미래를 잊고 까먹을 듯이 말이다. 발걸음을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간다. 경찰에 쫓기는 신세처럼 등을 보이고야 만다. 그는 과연 나를 보았을까.



그는 곧 최고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단지 그러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희망일 뿐이다. 나는 임수정을 닮고 싶었고 따르고 싶어했다. 

'넌 최고가 될 수 있어!'. 그를 곁에 두면 용기를 얻고 힘을 얻을 수 있을 듯했기에 그렇다. 사람들이 하는 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그리고 걸어나갈 수 있다. 무엇이 되든 너는 기둥처럼 탑처럼 설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신념이 되어 이 국가를 지탱할 수 있으리라. 스스로를 타이르듯 외쳤다. 영화배우가 또 하나의 내 자아인 듯이. 나는 임수정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를 지지했던 것이다.



그와 나는 운동을 멈췄고 그 세계를 떠나왔다. 우리가 마흔이 되었을 때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낯선 모습이었다. 그러나 알아차렸던 것은, 그 상처 많은 얼굴 뒤에 감춰진 어린 꿈이 지워지지 않은 채로 있었던 것이다. 


나는 노래한다. 그러나 우리 잊은 사랑과 꿈은 모두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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