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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Nov 26. 2023

전포동에서 파리를 느끼다


내가 주시해온 몇 디자이너들이 있다. 그들은 나보다 한 두 살 많은 형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왜 내가 뿌듯한지 알 수 없는 일들을 해나가는 사람들이다. 

20대에 난 옷 입는 일에 특히 관심을 가졌고 마침 인터넷 세상에는 수많은 쇼핑몰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부산대 앞에 매장을 둔 킹패밀리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사이트의 분위기나 옷들의 개성이 다른 어떤 업체보다 뛰어나고 훌륭했다. 그들은 옷을 파는 사람들이었다. 차츰 옷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다가가기 시작했다. 내가 만날 수 없는 사람들. 그 즈음 대구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열어 옷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이트 이름은 더봉봉이었다. 킹패밀리와는 규모에서 큰 차이가 있었지만 옷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가진 그들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얼마 뒤 프랑스로 유학을 가더니 디자이너가 되는 것을 봤다. 그나 다른 어떤 사람들에 영향을 받아 나도 프랑스로 갔고 또 다른 세상을 접할 수 있었다. 

더봉봉의 그 형은 급기야 디자인 대회에서 상을 받더니 The Kooples라는 곳에서 디자이너로 일했고 최근에는 미국의 Frame이라는 브랜드에서 수석 디자이너를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몇 년 전 나는 네버그린스토어라는 사이트를 우연히 알게 된다. 그곳에는 옷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알게 된 또 다른 디자이너였다. 알렉산더 맥퀸이나 에디 슬리먼이 얼마나 대단한 디자이너인지 나는 잘 모른다. 이브 생 로랑이 얼마나 대단했던 건지도 말이다. 단지 난 그들이 창조해낸 무언가에 미치도록 흔들렸을 뿐이다. 또는 그들의 삶에 말이다. 알렉산더 맥퀸이나 디올, 셀린느, 또 생로랑 같은 브랜드의 옷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다만 나는 아직 그들이 만든 옷을 입기에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사람이 되어 있지 못할 뿐이다. 나는 디자이너 안태옥을 인정하고 싶다. 그리고 최서인 형을 한 번쯤 만나고 싶고, 그때 파리에서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올리브드랩서비스 코트를 입고 거리로 나간 어제 나는 세상이 바뀌어 있는 것을 봤다. 어제 나는 다른 길을 걷는 기분이었고 다른 공기를 맡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모두 나보다 한 살이나 두 살 많은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후배의 관계가 유독 엄격하고 사용되는 호칭 또한 그렇다. 나는 그런 문화를 좋아하지만 이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을 외면할 수는 없다. 분야는 다를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그들과 경쟁하는 심리 또한 가진다. 그들이 내 글을 읽는다면 어떤 생각을 가질까. 내가 아는 건 그들 또한 글을 무척 잘 쓴다는 것이었다. 나도 옷을 만들면 그들처럼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디자이너들은 늘 앞서 나간다. 사랑도 생각도 늘 앞서 있는 듯하다는 느낌을 받고는 했다. 이 나라 이 세상은 고령화시대로 접어들었다. 나이 많은 게 무슨 죄인가.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그렇듯 이제는 그들의 가치가 인정 받아야 할 시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 또한 경쟁해야 한다. 에디 슬리먼이 칼 라거펠트와 다정히도 찍은 사진을 보며 나는 그게 너무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노무 자식들이 만드는 것들을 내가 따라 해야 할 이유가 있나. 나는 여전히 형들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밑에서는 계속 지형을 바꾸고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나는 새로운 신을 신기로 마음먹는다. 다른 공기를 맡을 것을 각오한 채로 집을 나선다. 내가 있을 수 없는 그들의 세계. 그러나 유행은 결국 돌고 돈다는 것. 나는 오늘 어떤 옷 속에 살았나. 그리고 그 옷은 누가 디자인한 것이었나.

나는 우리 동네에서 수선집을 하는 우리 아빠 친구가 고쳐준 옷을 입고 파리 거리를 누빈 적이 있었다. 바스티유 광장에서였다. 한 여자가 내 바지 무릎을 주시한다. 그때 난 그가 알렉산더 맥퀸과도 같은 재능을 가졌다 믿었는데 그건 절대 틀린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https://www.revistagq.com/moda/fashion-news/articulos/hedi-slimane-director-creativo-de-chanel-karl-lagerfeld/3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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