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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Dec 19. 2023

영화로부터 절망

Oppenheimer, 2023


나는 더 이상 영화를 볼 수 없을 것만 같다. 새로운 참신한 생각들이 없어서는 아니다. 그 모든 감독들의 두뇌 속 의도를 모두 읽어서도 아닌. 영화감독이 아닌 글 쓰는 일로 가자 마음먹었을 때 한 가지 예측했던 지점이 있었다. 나는 사진, 영상 같은 것에 대한 집착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한낱 글자라는 이미지에 가리워질 것을 미리 가 본 시점이 있었다. 세상 모든 물질은 결국 점으로 끝나 그렇게 소리도 없이 사라져버릴 테니.

'오펜하이머'를 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몇 분 보고 포기하고야 만다. 아니, 더 볼 필요 없다 생각했다. 나는 그 영화속 한 장면을 어떤 사람에 의해 이야기들었다. 그러한 장면이 있는데 그걸 그런 방법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때로 더 멋지거나 더 아름다운 생각은 글자로 혹은 들려오는 소리로 느낄 때 감동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는 것은 비행기를 타는 것과 같은 번거로움이 있다. 만약 당신이 돈을 내지 않고 은밀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영화를 감상한다면 그건 밀입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한 이야기의 생각을 전해 듣는 것은 더 없이 흥미로울 때가 있다. 어떤 생각은 좌절을 안기기도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내게 그런 존재일 때가 있었다. 내가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다면 그건 두 눈앞에 있는 것 절대로 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가는 자가 한 인간에 안기는 절망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가끔 허들을 넘어야 하는 육상 선수일 때가 있다.

영화감독들의 질투심을 읽을 듯한 순간들이 내겐 있었다. 오펜하이머를 몇 분 보면서 벌써 잡아낸 건 킬리언 머피가 열등생일 때 밤에 잠 안 잤냐고 몰아붙이는 교수가 '스노우맨'에서 욕실에서 운 아빠였다는 것. 그 역시 스노우맨의 그 장면에 공감하며 슬퍼했던 것이 분명하다. 유치하지만 난 그렇다. 그것이 말도 안되는 트집이라 해도 나는 상관없으니. '인터스텔라'에서 호이트 반 호이테마를 촬영감독으로 기용했던 것은 분명 '렛 미 인' 때문이었다. 물론 토마스 알프레드손이 그 정도로 천재다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살며 느낀 것 중 하나는 그것이었으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늘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나는 처음 그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인터스텔라는 보지 않겠다 다짐까지 했다. 그러다 결국 보고 난 뒤에 마음을 바꿨다. 그건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건, 그런 그가 킬리언 머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걸 보며 나는 그가 이 영화를 작정하고 만들었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스텔라를 만든 감독이 작심하고 만든 영화가 오펜하이머다 난 그런 소문을 퍼뜨리고 다닐 것이다. 우주로 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지구 멸망의 문제일지 모른다. 우리는 늘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그게 현실보다 앞서 있을 수는 없었다. 그건 결국 과거이기도 한 시점이니 말이다.  

지구가 동그랗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현재라는 시점에 대한 입장은 더욱 확고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행성과 같은 것이라고. 지금이 돌고 돌아 과거와 미래가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의 초기작 '메멘토'를 보면 그가 천재는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다만 그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집념이 있었다는 것을 느낄지 모른다. 

포스터와 스틸컷, 예고편으로 이미 많은 것을 이루어낸 영화일지 모른다. 그것보다 오펜하이머라는 이름을 씀으로써 영화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많은 연구원들이 들러붙어 완성해 내는 어떠한 거대한 물질과 같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끄집어내 드러내 보여야 했다. 맨해튼 계획처럼 그건 철저한 비밀에 부쳐지기도 한다. 애석하게도 크리스토퍼 놀란은 평범한 인간이라 보기 힘들다. 남들 다 그래픽을 활용할 때 고집부려 막노동을 하는 것이 그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런 천재적인 감독은 늘 대중의 압력에 의해 탄생한다는 것을. 그게 왜 미련한 짓인가. '테넷'에서처럼, 찍은 영상을 뒤로 돌리면 될 일을 반대 방향에서 똑같이 찍고 있는 것이 진짜 바보가 하는 짓이란 말인가. 

토마스 알프레드손 만큼 분위기로 조질 줄 아는 감독은 아마 흔치 않을 것이다. 박찬욱처럼, 아니면 봉준호와 같이. '포제션'을 만들었던 그 시절의 그 감독같이. 진짜 미친 인간들은 따로 있었다 말하고 싶을 만큼 나는 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러나 나는 소련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 맞서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이기도 했다. 우리는 정녕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인가. 내가 쓴 세 번째 소설은 오펜하이머와 닮은 구석이 조금 있다. 나는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글을 썼다. 오펜하이머가 한 장의 엽서와 같은 것이 될 수 있다면 영화는 언제나 소장할만하다. 마음 속 깊은 곳에, 혹은 내 커다란 집 조그만 방 한 구석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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