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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Dec 23. 2023

세상에 안 아픈 신은 없다

https://youtu.be/Kp7eSUU9oy8?si=bw3zQvgRd3uoxVvN


얼마 전 근무지에서 한 근무자가 발을 다쳤고 안전화 미착용에 대한 공지가 내려왔다. 그걸 신지 않으면 근무도 시키지 않겠다는, 위에서는 그런 강경한 정책을 펴보였다. 나는 순간 열이 받았는데, 다름이 아니라 왼쪽 발볼에 굳은살이 박혀 있어 웬만한 신은 이제 신는 것조차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다친 자의 고통은 생각치 못했다. 헤아리지 못한 것은 다른 사람의 아픔이었고 내일도 난 발이 아플 것이 뻔했다. 고작 만원짜리 안전화 사줘놓고 그런 말을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그 자리에 오며 모두에게 신을 선물한다 했을 때 난 감동했다. 선물은 마음이지 않은가. 중국산 신발이라 해도 자신의 메시지가 담긴 신을 선물한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나는 살며 많은 사고로 죽고 다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내게 들이닥칠 고통이었다.

아무래도 투자가 필요했던 듯하다. 근무지 밖에서의 생활에만 투자하다 보면 근무지 안에서의 생활에 소홀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출근하기 싫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아닌지. 함바그 아닌 한바그라는 브랜드의 신을 구매했다. 등산화이지만 발의 앞과 뒤를 보호하기에 충분해보였다. 

"혹시 275mm도 있나요?"

거짓말과도 같이 마침.

"이게 275mm네요. 이게 마지막 재고에요."

창고에도 없는 그 마지막 신을 구매했다.

"이건 세일 제품이네요."

그런 기가 막힌 우연이 다 있던가.

그건 독일 브랜드 제품이었고 중국산이 아니라 Made in Serbia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런 일이 다 있던가. 신을 신어 보았더니 굳은살이 있는 쪽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꽤 무겁고 딱딱한 신이었지만 뉴발란스 신발보다 더 편안한 착용감을 선사했다. 일상에서도 이 신을 신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곧 긁히고 너덜너덜해질 그 신의 운명을 생각하니...

자기 일인지 다른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업무란 늘 그랬던 것 같다. 노동은 늘 반항심을 품게 하며 나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있는 건가 생각하고는 한다. 내겐 돈이 필요했다. 책을 낼 돈도, 옷을 사 입어 밖으로 돌아다니기 위해 나는 시간 들여 노력해야 했다. 나는 어느 거대한 슈퍼마켓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자 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늘 그것이다. 남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랑스러울 수 있는 일. 스스로 뿌듯해질 수 있고 그러므로 자신감을 가질 그를 위해.

좋은 직장이란 없지만 남 보기 부러울 직업은 존재하는지 모른다. 나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의 일은 늘 부럽고, 하지만 내가 과연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을 때가 있다. 내가 군인이라면 나는 전쟁터에 나가 싸울 수 있을까. 처음 글을 쓸 때는 몰랐다. 그것이 폭탄이 되고 대량살상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식당에서 일할 때는 몰려드는 손님들이 적군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진격을 막고, 아니 대충 타이르고 컨트롤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시대에 무슨 전쟁인가. 나는 늘 나 자신과 싸우지 않았던가.

한바그든 함바그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 신 하나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끄집어낼 수 있다면. 중국산 신이 영 신기 힘들다면 세르비아에서 만들어져 공수된 것을 신으면 됐다. 마티치가 기계를 작동시켰을까, 혹은 미트로비치가 안전 관리를 책임졌을까. 나는 프랑스 한인마트에서 일할 때 네덜란드인 배송기사와 함께 빨간 목장갑을 나눠 낀 채 물건을 실어 나르고는 했다. 그게 수요일이었던지 목요일이었던지도 가물가물하지만. 로테르담이 유럽 물류의 거점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기억하게 됐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네덜란드 녀석의 헤어스타일이 나와 닮았다는 것 역시.



우리는 빨간 장갑을 끼고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안전한 신을 신어야 함을.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논리 때문에 발악하듯 나는 오늘도 쇼핑을 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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