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윤범b Dec 29. 2023

이 영화는 소설이다


서른일곱 영화감독, 독재자를 만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는 남조선의 영화감독 정인형 납치 계획을 세운다. 그가 동쪽 바다로 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동해의 어느 해변가에서 한 남자를 보며, 그가 사라진 뒤 그는 곧 어떤 이들에 의해 이끌려간다.

그는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아내와 아들을 둔, 하지만 동시에 그 세계 속에 속한 평범한 인물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좌파라 여긴 적 없고 오히려 독단적인 연출로 세간의 비평에도 시달린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는 혁명을 꿈꾸는 몽상으로 가득 차있다. 

평양으로 온 그는 곧 독재자에 불려간다. 리 국무위원장은 지하실로 정인형을 초대하고 그곳에서 단둘이 술잔을 기울인다. 영화 이야기를 하고, 때로 어느 늦은 청춘의 낭만에 대해 논하기도 하며. 

그와 그는 같은 나이이며 한 명의 리더로서 사람들을 이끌어간다는 동질성도 가졌다. 하지만 정인형 그에게는 그가 너무도 높은 태양일뿐.

언론은 일제히 정인형 실종 사건을 보도하며 세상을 들썩이게 한다. 남쪽 나라의 사람들은 그가 그곳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누가 어떤 꿈을 꾸는지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듯, 평양은 그토록 비밀스러운 국가의 수도이자 지구상 가장 폐쇄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그곳 거리를 거닐며 그는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나가기 시작한다.

곧 쿠데타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그는 남쪽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린다. 영화를 찍을수록 그곳으로부터 보다 멀어지는 기분이 들지만 꿈을 꾼다. 남과 북의 관계는 좀처럼 개선될 줄 모르며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폭격기를 띄우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독재자는 실험을 거듭한다. 미사일을 쏘아올리며 아메리카 땅을 향해 경고한다. 영화는 곧 완성되고 그 작품은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에 초청된다. 그곳에서 그는 탈출을 시도하며, 그러나 그가 돌아갈 땅은 이전처럼 자유로울까. 또는 그것을 부정하게 되는 자신의 시선을 목격하게 될까.

이 이야기는 가본 적 없는 평양에 대한 에세이이자 한 명의 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작가는 자신을 영화감독으로 분하게 하며 나는 거울 속 그를 본다. 눈동자 초점이 흐려지며 두 얼굴이 보인다. 사람들은 여전히 통일을 꿈꾸고 누군가는 그것을 반대하지만 그건 긍정과 부정에 대한 이중성에 불과할 뿐, 그러나 진정 그들이 숨겨 놓은 꿈은 따로 있지 않았던가. 당신이 영화를 만든다면 당신은 어떤 장면들을 찍을 텐가. 이젠 세상에 그것을 드러내 보일 때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이 이야기를 최은희 신상옥 납치 사건에 영감을 받아 그리게 됐다. 어느 날 문득.

3월 자비출판을 목표로 마지막으로 출판사 이곳저곳에 찔러 넣기 계획을 세운다. 출판사에서는 줄거리와 같은 것들을 요구한다. 큰 출판사의 경우 투고되는 원고량이 많아 그것들을 다 읽는 것이 고된 업무라고도 한다. 들어보지 못한 이름의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책을 내달라며 글을 써 보낸다. 그중 한 사람이 나였다. 이번에는 조금이나마 그들 입장이 되어보는 기분도 든다. 이런 시놉시스를 어떻게 외면할까, 이게 정말 책으로 낼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일까. 무명의 작가는 늘 투자받기를 기대한다. 그러려면 어필을 해야 하는데 그건 참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항의로 번질 것만 같은 마음이기도 했던. 왜 또 그런 답장을 보내오나 같은 심정이 일고는 했다. 그 답장의 레퍼토리는 항상 같았다. 언제나 그런 이야기를 해오던. 저희와 방향이 맞지 않다는..

출판사와 작가의 관계야말로 그들 관계이지 않았던가. 내겐 리 국무위원장 같은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그가 내 안에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그를 이해하고 용기 내 다가가기도 하는 등 관계 개선을 이루어낼 수 있지 않을까. 우선은 자신 안의 독재자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남과 북의 문제가 그토록 어려운 건 독재자는 그 선 너머에 있다는 것. 그토록 하찮기만 한. 그것을 지우려기보다 선을 넘나드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편이 나는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영화감독이 되는 꿈을 포기하지 못한 것만 같다. 


https://youtu.be/upA01bvUemQ?si=wTImIEPt6Lr5m4wg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 안 아픈 신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