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에는 정신이 있다

by 문윤범


세 번째 가게


수요미식회에서 '국밥계의 평양냉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돼지국밥이 있다. 범일동에 있는 '50년 전통 ㅎㅁ국밥'의 국밥이다. 나는 아직 그곳을 가보지 못했다. 방송에 나온 곳에 곧장 달려가는 걸 원치 않는다. 사람들이 많을까봐.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 소설을 고르지 않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책 한 권을 고르고자 하는 의지와 같은 것이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나는 겉표지에서부터 풍기는 분위기에 이끌린다. 어느 한곳으로 끌려 들어가는 감각에 투자하고자 한다. 오직 작가와 출판사, 서점을 위해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에 투자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자기 자신에게도 투자해야 하는 일일지 모른다. 문학이라는 세계 속에 있다면 말이다. 국밥집을 선택하는 감각이 중요한 것처럼.

저 간판, 그 주위에서 풍기는 어떠한 분위기에 끌려 들어가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성공과 실패가 그 선택 하나에 결정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성공한다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패한다면 더 노력하게 될 수 있다. 평점으로 판단하는 것에도 위험성은 있다.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고 성공해도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 실패한다면 식당 사장과 평점 매긴 사람들만 탓하게 될지 모른다.

ㅎㅁ국밥은 범일동에 말고도 많다. 나는 부곡동에서도 보았고 송정에서도 보았다. 범일동 국밥집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으로 안다. 보편적인 작명 방식인지 그 가게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산에서 ㅎㅁ국밥은 그 명성이 자자했다. 국밥하면 범일동이기도 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조방 앞이라 부르는 곳이다. 일제강점기부터 1968년까지 조선방직이라는 회사, 공장이 있던 동네다.

그곳에 대한 기억은 아직 남아 있다. 젊은 세대들의 입도 조방이라는 단어를 선택해 말할 때가 있다. 조방낙지를 판매하는 식당도 서로 '원조'를 내세우며 영업 중이다. 그런데 진짜 원조로 알려진 조방낙지 가게 이름에도 ㅎㅁ 초성이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랜드마더가 요리사의 원조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셰프들은 그들에게 숙이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등이 굽었으니까. 육수 거품 걷어내느라 토렴하느라 척추가 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건 금전적 수확을 얻는 일이기도 했다.

그곳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ㅎㅁ국밥에 대한 대체적인 평은 맛이 깔끔하다는 것이었다. 국물이 맑고 심심해 수육백반이 인기 있는 곳이라고 했다.

소화를 돕는 것은 새우젓뿐만이 아니다. 가게를 나오면 부산의 오르막길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길로 이어져 여행객들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계단 중간 어딘가에서 새우처럼 등이 휠지는 모르겠지만.

그 끝에서 새로운 영감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네 번째 가게(들)


대립 구도가 참으로 묘하다. 대립이라는 단어보다는 오히려 대비라는 단어가 어울릴지 모르겠다. 그 ㅎㅁ 국밥 반대편 저 멀리에는 많은 국밥집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사이로 철도가 있어 넘어가려면 육교를 건너야 한다. 육교를 기준으로 서쪽에 ㅎㅁ국밥이 있고 동쪽에 수많은 국밥집들이 있다. ㅁㅅ식당 ㅎㅊ식당 ㅎㄷ식당 등등의 국밥집들이 있다. 엄마가 돼지국밥집을 열기 위해 단기 연수과정을 거쳤던 곳이 그 세 집 중 한곳이라 했는데 이상하게도 엄마는 가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중 엄마의 고향 이름이 들어간 곳이 있기는 한데, 잘 모르겠다. 정작 본인이 모르겠다고 말하니.

고등학생 시절에 먹었던 국밥의 맛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15년 동안 군만두를 먹지는 않았으니까. 몇 달도 되지 않아 질려버렸으니까.

돼지국밥과 같은 음식이 부산이라는 도시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황교익 칼럼니스트도 그 이름이 부산의 정서를 대변한다는 말로 대신할 뿐이었다. 서울에서 순대국을 처음 먹어봤을 때 놀랐다. 이태원 어느 좁은 골목길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혼자서 국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주말 드라마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하기도 했다. 곧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쥔 남자 한 명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말한다.

"집에 안 가시고 뭐하세요~ 오늘도 술이야?"

직장동료였다. 그는 소주 한 병을 더 시켜 동료의 잔에 따랐다.

메뉴판을 보고 있던 난 옆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먹던 음식을 골라 주문했다. 부산에서 먹는 돼지국밥과는 또 달랐다. 하지만 다를 것 없었다. 우리의 정서일지도 몰랐다. 뚝배기에는 한국인의 정신이 담겨 있다.

돼지국밥이라는 네 글자는 부산뿐만이 아니라 경상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쓰인다. 밀양국밥이 대표적이고 집집마다 틀리지만 소뼈를 우려 육수를 내는 차이점도 있다고 한다. 대구 사람들이 즐겨 먹는 빨간 국물의 선지국도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 중에 하나다. 그런데 요즘은 뚝배기 그릇을 놋그릇으로 대체하는 가게들도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도구와 서빙 방식으로 고객들에 어필하는 식당들도 눈에 띈다. 정신이 스피릿이 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돼지가 있어 고마울 뿐이다. 그저 국과 밥이라는 단어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국밥 먹으러 가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문장 중에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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