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를 만나다 1부

episode 9

by 문윤범


콜라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진 사람도 아닌 내가 여름이 되자 콜라를 찾기 시작했다. 그건 내 모습이 아니었다. 빨대 꽂힌 콜라 병을 앞에 두고 찍은 내 사진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Ménilmontant의 한 카페테라스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길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사진 한 장 찍어달라 부탁하던 일이 흔했다. 어느 날은 계단에서 마주친 할머니를 멈춰 세워 카메라를 내밀며 사진 한 장을 찍어달라고 했는데 난 그 할머니가 취한 포즈에 놀랐다. 찍힌 사진을 보면서 절묘한 구도에 감탄하기도 했다. 잘 나왔어요! 그건 카메라가 만지기 쉽구먼! 그런 대화들을 주고 받으며, 그렇게 할머니는 다시 계단을 내려가고 난 다시 계단을 올랐다.

내가 콜라를 찾기 시작한 이유는 답답해서였다. 집으로 돌아오면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고, 누군가와 대화를 해도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지 못했을 때 찾아오게 되는 증상은 목구멍에 무언가가 걸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라도 짧은 대화를 주고받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던 것은 아닌가. 어쩌다 그 음료는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음료로 자리매김하게 됐을까.

미국 대사관 건물은 컸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밤 본 경비대가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미국 대사관 건물의 모습이 떠오른다. 대사관 크기는 그 나라의 국력을 나타내는 걸까.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음료 코카콜라는 미국의 국력을 의미하는 것일까.

콜라가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개발되고 유통되기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국력이란 어쩌면 전쟁능력에 있는지도 모른다. 무역도 전쟁이다.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일도 중요하다. 내가 배운 것은 합법적인 중독 행위에 빠지는 것이었다. 술 담배 커피 콜라를 모두 하는 사람이 있고 그중에 하나만 하는 사람이 있다. 넷 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넷 중 하나라도 하지 않기 위해서 Orangina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으로 수입돼 들어오기 시작한 프랑스의 대표적 탄산 음료다. 탄산수도 마시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도 답답함은 해소할 수 있다. 카페인은 의지와 연결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기 위해 노력할 수는 없었던 걸까. 그러려면 술을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냉전이 일상인 시대에 나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중에 스파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다고 주머니에 술을 넣고 다니며 홀짝홀짝 마시는 사람은 아니었다. 혼자서는 잘 마시지 않았다.

파리는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도시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면 어김없이 파마스 소총을 든 프랑스 군인들이 경계 근무를 하고 있었다. 콜라는 세계 2차 대전을 기점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음료였다.


콜라는 햄버거나 피자를 먹을 때 함께 마시는 것이다. 하지만 케밥을 먹을 때도 꼭 옆에 두어야 하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터키의 전통 요리 케밥도 유명했다. 한국에 있을 때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맛있다 느끼지 못했다. 고기 요리인데 밥자가 붙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도 잘 맞을 것이라는 기이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내 입에는 맞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파리에서 케밥을 한 번 맛보고는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 입에 맞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햄버거를 먹을 때보다는 밥을 먹는 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빵이 맛있는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바게트 빵에 끼워주는 프랑스 케밥은 한국에서 먹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음식 같았다. 그때와 그때의 내 처지도 서로 달랐다. 등 떠밀려 들어온듯한 사회에서 잠시 도망 와 있는 기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 그럴듯한 모습으로 그럴듯한 일을 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다. 한식당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케밥 하나를 사 들고 집으로 왔다. 이 일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더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누군가에게라도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국으로 가면 또 무슨 일을 하고 살까.

그럼에도 직장 생활은 내게 맞지 않을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 일이 자신에게 맞다 생각해 하는 것일까. 그들은 혹시 내가 한국에서 먹었던 케밥을 먹는 것처럼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파리에서의 자유란 외국인 신분이었기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이었기도 하다. 그리고 프랑스에 유학 올 정도면 나중에 뭐라도 될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뭐라도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저한 계획 아래에서 행동했던 것은 아니지만 치밀한 계산하에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회피하는 동네들을 찾아다니고, 또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실랑이도 몇 번 했다. 아랍인들만 모여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시비가 붙기도 했다. 풍경 사진을 찍고 있던 내게 사진 찍지 말라고 위협하던 벨빌 어느 양아치들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 그들을 머쓱하게 만들기도 하는 등. 그러면 한 프랑스인이 다가와 잘했어, 쟤들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하며 나를 독려하기도 했다. 하나의 트레이닝이었다. 내가 변할 때 내 삶은 달라졌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에 부딪히는 것이기는 할 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돼지국밥에는 정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