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에는 정신이 있다

by 문윤범


부산대학교 앞 어느 지하 식당에서 만나게 된 정신이었다.


중학교 때였다. 돼지국밥을 처음 맛본 건 말이다. 일반 식당이었지만 돼지국밥도 팔고 있었다. 그 나이에 미식에 대한 어떠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눈앞에 맛있는 게 있으면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이념만이 존재했을 뿐. 난 이 음식이 맛있다고 말했다. 엄마는 내 그 말을 식당 사장님에게 전해주었다. 그래봤자 학교 앞 식당일 뿐이었다. 국밥 전문점도 아니었다. 내 돼지국밥 역사의 뿌리는 그곳에 있었다. 지금은 없다.

고등학생이 되자 엄마가 장전동에 조그만 국밥집을 차렸고 몇 년 동안 집중적으로 먹게 되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질려버렸다. 엄마는 추어탕과 함께 돼지국밥을 팔았는데 장사는 잘 되지 않았다. 추어탕은 그녀의 자부심이었고, 돼지국밥도 맛은 괜찮았으나 사업가로서의 자세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엄마는 오직 깔끔한 맛을 내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시키는 사람이었다. 국밥집 손님의 대부분이 성인 남성이었음에도 그들에 강한 경계심을 가진 여성이기도 했다. 몇 년 후 가게 문을 닫았고, 그리고 몇 년 후 난 다시 국밥집을 찾기 시작했다.



첫 번째 가게


서면시장에는 네 개의 국밥집이 따닥따닥 붙어 문을 열어놓고 있는 길이 있다. 모두 24시간 영업하는 가게들이다. 새벽에는 가본 적이 없다. 서면에서 술을 마시면 막차 시간에 맞춰 집에 가기 바빴다. 집까지 10km 정도 거리인데다 그 시간에 택시비를 쓸 만큼 심야 운수업에 투자하는 편도 아니었다. 한 번은 12시가 넘도록 술을 마시고 집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는데 중간 지점인 사직동 즈음에서 큰 좌절을 맛봤다.

20대 초반에는 혼자 음식점을 찾아갈만큼 용기있지도 않았다. 서면에서 일할 때였다. 사장 형을 따라 점심을 먹으러 ㄱㅈㅂㄱ 국밥집에 갔다. 순대가 들어간 국밥을 처음 먹어봤다. 직설적인 돼지국밥과는 조금 달랐다. 순대란 어느 정도 꼬여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크기가 큰 것도 ㄱㅈㅂㄱ 국밥 순대의 특징이었다. 순대를 찍어 먹을 수 있는 소스도 따로 준비돼 나왔고 사장 형은 여기에 찍어 먹어야 맛있다고 했다. 그때 난 그의 삶을 동경하고 있었다. 내가 일하던 곳은 인터넷 의류 쇼핑몰이었는데 당시로는 드문 시도들을 많이 했다. 사장 형은 사진가이기도 했고 독특한 콘셉트로 사진을 찍어 사이트에 올리고는 했다. 옷을 입힐 모델들도 특이한 얼굴의 모델을 선호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나였다. 178cm 정도의 키에 몸매도 뛰어나지 않았지만 개성 있는 얼굴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카메라 앞에 세웠다. 어쩌다 거기서 잡일까지 하게 되었다. 몇 개월 일하지 못하고 그만뒀다.

개인적인 능력에 대한 좌절감과 사장 형에 대한 원망이 회전교차로의 차들처럼 내 머리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 즈음 난 순대국밥의 맛에 빠지기 시작했다. 옆자리에서 술 한 잔에 국밥 뚝배기를 기울이는 아저씨들을 보며 낭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때 TV에서는 롯데 자이언츠 야구가 중계되고 있었는데 김주찬이 홈으로 쇄도하다 아웃당했다.

"에레이~"

그때 아저씨들은 그렇게 말했다.

아직 혼자 국밥을 먹으며 소주를 까는 일은 시도해 보지 못했다. 커피는 혼자 마시는 게 좋지만 술은 혼자서 못 마시겠다. 쓸쓸해 보이는 건 괜찮아도 처량해 보이는 건 견딜 수 없어서다.



두 번째 가게


서대신동 ㅁㅅ집 돼지국밥은 최근에 알게 된 가게다. 개그맨 최양락이 출연하는 '노포를 위하여'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유튜브를 통해서 봤다. 지나가다 본 적이 있는 가게였다.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방송에도 나온 맛집이라니 가서 먹어보고 싶었다.

국물 맛이 깔끔했다. 돼지국밥은 거친 맛이 매력이기도 한데 처음에는 그 맛이 밍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빠져드는 맛이 있었다. 뚝배기 바닥이 보일 때부터 밀려오는 무언가가 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와 구덕운동장 방향으로 걸을 수록 뒤돌아보게 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가게 간판이 보였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갈비수육이기도 한데 다른 집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노포를 위하여 방송분에 따르면 사장님이 갈비를 도끼로 손질한다고 한다. 감자탕과 해장국도 파는 곳이다. 얼마 전에 30~4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가게를 이전했는데 분위기는 유지되고 있다. 이사를 한 뒤 계산대에 사탕도 놓아두었는데 별미다. 사탕의 원산지가 어디인지는 알지 못한다.

국내산 암퇘지를 취급하는 집이라 고기의 육질이 부드러웠다. 국물이 깔끔해 소면을 말아먹는 맛도 괜찮았다. 순간 제주도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판을 보니 돼지우동과 돼지국수도 팔고 있었다. '이런 다양한 메뉴를 팔면서도 돼지국밥집으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는다는 건 사장님의 전술가적 면모가 돋보이는 부분이야.' '고독한 미식가'의 마츠시게 유타카처럼 혼자서 그런 말도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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