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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Jan 31. 2024

1262호


호텔, 그 낯설고도 쓸쓸한 방 안 같은 삶이란...

한 장의 종이 위 글자들로 설명되지 않는 이 이야기는 늘 부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뉴욕 브루클린에 양조장을 두고 소주를 만드는 남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맛이 궁금했다. 다른 나라들의 술은 모두 놓아두기 예쁜데 우리 것은 왜 안 예쁠까 아쉬워하고는 했다. 그러다 우리도 점점 예쁜 병에 술을 담는 것을 보며, 곧 토끼 소주라는 것을 알게 되고 언젠가 그 술을 맛볼 날만을 기다린다. 어디서 누구와 함께 마실까, 혼자 마시지 누구랑 마시나 결국 그리돼버렸다. 영등포의 한 호텔 방에서.. 적절한 안줏거리를 찾지 못해 편의점에서 산 튀김우동과 함께.

7만 원대라길래.. 거짓말 안 하고 8만 원을 넘지 않는 가격에 하룻밤을 묵었다. 서울은 늘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은데 막상 가면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기억을 곱씹었다. 생각해보아도 떠오르지 않자 가장 가까운 날 가고 싶어했던 곳으로 간다. 아더에러나 가야지..

버스 창문 밖 서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본다. 도로 위의 그 풍경을. 누군가는 그것을 아름답다 말했다. 하필 버스 전용차로가 없는 길로 들어서 두 정거장 가는데 10분 넘게 걸렸다. 지하철로 갈아타고 성수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어디선가 마주한 적 있는 풍경 같았다. 그래, 일 년 전쯤 글 쓴다고 여기 거리뷰로 찾아봤잖아 싶어 자신 있게 걷는다. 



역시,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전포동 아더에러 매장보다 분위기 있지는 않다 싶었지만 볼거리는 더 많았다. 사람도 더 많았고.




그곳은 더 넓고 크니까..



저녁은 초류향에서 먹기로.



중국인이, 혹은 화교가 만든 동파육을 처음 먹어봤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이제는 횡단보도에 서서 존다. 걸으며 졸고, 정말 위험한 것을 아는데 다른 길이 없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은 채 흐느적 춤을 추니 누군가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다음날 출근해 냉동창고에서 또 존다.

숙소 근처에 이마트가 있어 토끼 소주를 사러 갔는데 이마트가 문을 그리 빨리 닫는지 몰랐다. 그래, 마트는 12시까지 하는 홈플러스지 하며 또 걷는다. 아침이 되어 눈을 떴더니 여전히 전철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제 그 토끼소주는.. 뚜껑을 열자 올라오는 향에 놀랐고 한 모금 마셨을 땐 보드카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어 감동했다. 내가 그토록 선망해온 술 보드카. 약간 위스키 같기도 했는데 그건 한국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했다. 그러면 그 술이 최고라는 말이 된다. 

늘 꿈꿔왔던 소주를 만난 듯했는데 내게는 병이 예쁜 것이 중요하다. 바다로 둘러싸인 땅 제주에서 한라산을 처음 만난 뒤 그나마 이게 낭만 있다 싶었지만 꿈을 이루어준 건 결국 미국인이었다. 때로는 바깥 세계의 눈이 이 세계의 것을 더 정확히 본다. 소주가 얼마나 단순하고 멋진 술인지. 아침 문래동 왕자상회에서 차돌된장찌개를 먹고 입안에 된장 콩 하나가 남았는데 그 맛과 어젯밤 마신 소주의 맛이 잘 구분되지 않았다. 영문으로 적힌 토끼라는 글자가 내 눈에는 왜 한글로 보였던지..



우리 것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초라하지 않을까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내 가족이 늘 초라하지 않아야 하듯 내가 속한 곳에 대한 뿌듯함을 가지며 살아야 했던. 나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부정해 본 적 없고 내 고향 부산을 늘 자랑스레 여겼지만 언제나 다른 세상이 나를 이끌었다. 반복되는 하루 패턴에 질려 무작정 터미널로 향한다.

문래동의 아침은 지난날 여름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땐 창작촌이라는 이름도 지어지지 않았고 아파트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달라져있었다. 그러고 보니 서울 와서 광화문 안 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https://youtu.be/GsPq9mzFNGY?si=nZANa9Hg96dqVBz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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