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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Feb 19. 2024

나도 모르게 그 길로 들어서버린 것을


게스트하우스란 여행자들이 저렴하게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을 의미한다. 첫 날 나는 호텔에 묵었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나와 택시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갔고, 여럿이 우르르 몰려와 딱시 딱시 거리는 소리와 그들 몸동작에 겁을 집어삼키고는 곧바로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20유로에 묵을 수 있는 호텔로 가줄 수 있나요?"

물론 한 가지를 물어보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 대답은 Non!도 아니었으며 돌아온 것은 실소 뿐이었다. 

"그런 곳은 없어~"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런 호텔이 몇 있었는데 쉬운 일은 아니었다. 찾기보다 힘든 건 침대 시트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까지 참아가며 거기 누워있어야 했던 것이다. 

발걸음을 돌려 어디론가 향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뒤따라갔고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광역급행철도역으로 왔고, RER이라 부르는 열차를 탈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 역의 분위기도 등을 움츠러들게 하기에는 마찬가지였다. 열차 한 구석에 앉아 저 멀리 서 있는 남자 한 명과 눈이 마주쳤는데 파트릭 비에이라의 눈동자를 닮아 곧장 눈을 내리고 말았다. 

도시의 중심가로 와 방을 찾아 헤맸고 한 배려 넘치는 녀석을 만나 60유로 70유로 지불하고 하룻밤 보내지 않아도 될 방을 찾는다. 그곳에서 싼 방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며칠 뒤에는 급기야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찾기에 이른다. 그곳에서 한국인들을 만났을 때 나는 마치 만주에서 우리 민족을 마주한 독립운동가와 같은 심정이었고.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기 마련이었는데 그곳에 온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독립을 꿈꾸는 자들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따뜻한 밥이 차려진 식탁에 모여 앉았던 그 기분을 아직도 지우지 못한다. 다시 가면 멋스러운 호텔 방에서 지내고 싶다. 그런 긴장 가득한 얼굴로 앉아 먼저 와 그것을 푼 듯했던 사람들을 보고 앉아 있고 싶지는 않다. 한 번 더 그러고 싶지는 않다. 마치 독립 소식을 전해들은 듯 그곳을 떠날 때 나는 여유 넘치는 표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때는 더 여유롭지 않을까. 다시 그곳으로 간다면,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도시에서 3년을 머문 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음에 틀림없다. 일관된 주장 변질되지 않은 이념이었지만 그 시선은 조금 달라져있었던지 모른다. 한국 거리에서 외국인을 스치고 지나면 순간 그 짧은 표정을 읽을 듯했다. 그 복잡 미묘했던 표정을 말이다.

'당신은 밀정인가 그렇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너무도 친절하지만 누군가는 나를 경계했다.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고 싶고 따뜻하게 대해주고도 싶었지만 이내 모른 체하고 지나가버린다. 많은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지나치고 말았다. 그저 이 도시를 더 혼잡하게 만드는 여행자이거나 이민자이겠지 하며 지나가버린다. 아니면 이 도시에서의 운명을 받아들인 자였거나. 

어떠한 목적을 가진 여행이라면 그건 더 이상 여행이 아닌게 된다. 그는 뼛속 깊이 변하고 말 것이다. 여전히 같은 피부 같은 껍데기일지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옷차림은 인간 사상을 나타낸다 할 수 있다. 한 남자가 내 옷깃을 스치고 지난다. 그건 너무도 익숙한 그 도시의 냄새만 같았기에.

한 러시아 남자가 술 냄새를 풍기며 지나갈 때는 그래, 저런 사람들이 있어야 양아치들이 못 설치더라 되뇐다. 그곳이 스파이를 길러내는 곳이라면. 그 장소가 그런 아마추어들을 처음 재우는 곳이었다면.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그런 사람일 수 있음을. 이 국가를 위해 소리 없이 싸우다 잠드는 별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러려면 반은 그 국가에 충성할 줄 아는 배신자의 면모가 필요함을 말해주고 싶다. 내가 배운 것은 오직 한 나라에만 충성하는 마음가짐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는 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https://youtu.be/W95kTOKQR1Y?si=wJol2N8k7WZHDm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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