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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Mar 02. 2024

1955버거를 먹고

https://youtu.be/KRuZnXtBbSc?si=3vKep2-00I-NfIF3


나는 GS의 어느 낮은 곳에서 일한다. 저 높은 곳에 있는 자는 닿기 힘든 곳에. 그곳이 산 정상이라면 여긴 아무나 발 들일 수 없는 정글과 같은 곳이다. 산소는 충분하다. 숨 쉬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하루하루가 전쟁 같다. 이곳이나 그곳이나 살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서로 잘 모르지만.

내 쉬는 날의 일상 중 하나는 맥도날드에서 1955버거를 먹는 것이다. 원했던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 됐다. 밤에 문 연 곳은 죄다 해장국집들뿐이고 돼지국밥도 일주일에 한 번씩 먹는 건 그렇다. 집 가까운 곳에 24시간 문을 여는 맥도날드가 있어 자주 간다. 고든 램지는 왜 1966버거를 만들었을까, 그 물음이 내 손가락을 그 글자에 터치하도록 만들었는데. 결론은, 소고기 패티에 베이컨, 토마토 조합이 가장 좋다고 느끼게 된 곳은 결국 맥도날드에서였다. 다른 프랜차이즈 햄버거집들보다 합리적인 가격이었으니. 

고든 램지라는 자를 처음 인지하게 된 게 5년 전이었는지 8년 전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처음 본 것은 스테이크 굽는 영상이었는데 아주 짧으면서도 클래식한 고든 램지 요리로 남았다. 그리고 본 게 햄버거 만드는 영상이었는데 다진 소고기 사이에 베이컨을 또 다져 넣는 것을 봤다. 또 파프리카 가루라던지 BBQ 소스 등을 넣어 향을 더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만들면 대충 이런 맛이 나겠구나 느낀 것이 1955버거를 먹던 순간이었다. 모두 누구를 흉내내려 한다. 처음부터 천재인 사람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나는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나와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는 프로를 보기 불편해하는데 왜 평가받으려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나는 그랬다. 이렇게 글을 쓰면 누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하고는 했다. 평가를 받는 건 별로 도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평가를 해줘야 한다고 하지만 자극이 필요한 것뿐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얻은 것은 결국 이 갈리는 심정뿐이었으니. 

평가는 스스로도 할 수 있다. 균형을 유지하는 게 힘들 뿐이지. 영원히 인정받지 못할 경우가 있을 뿐 내가 최고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쉐이크쉑 버거도 먹고 고든 램지 버거도 먹을 돈을 얻기 위해 욕심부리는 것이 아닌가. 쉐이크쉑은 오버페이 해서 한 번 먹어봤는데 고기 맛이 남달랐다. 그뿐이었다. 언젠가 꼭 1966버거를 먹어보고 싶다. 그 빵 사이의 고기는 패티가 아니라 그냥 스테이크던데.

산 정상에 있는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1966버거를 먹을까. 내가 아는 건 그들은 창조적인 일을 하기 위해 비싼 돈 들여서라도 무언가 쓸모 없는 짓을 한다는 것이다. 정글에 살면 창조적이기 힘들다. 하루하루 버텨내는데 모든 것을 거는 것만 같다. 모두 정해진 일을 하고 정해진 패턴대로 움직인다. 일을 하면서 가장 답답한 마음이 들 때다. 그 순간에는 콜라 한 잔을 들이켜야 할 듯 속이 꽉 막힌 기분이 든다. 내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에 대한 책임만 져야 하는 것을 알 때. 그러나 그 구역은 우리 것이었다. 그러니 위에서 평가를 하러 올 때 가장 예민해지기도 한다. 서로의 일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대로 점검하는 방식이라 제일 짜증이 난다. 왜 나는 GS 정상에 있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할 수 없는 건가.

이쯤 되니 노동자들의 투쟁마저 회의적으로 느껴지고는 한다. 왜 항상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대드는 모양새가 돼야 하는 걸까. 나는 한 번도 스스로 그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본 적 없다. 나는 아주 낮은 고도에 있을 뿐 다른 것이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GS 임직원들이 한 스타 영양사가 해주는 밥을 먹는다는 것을 알고는 상심하고 말았다. 내게는 어느 창의적인 요리사의 손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은 정글이다. 사냥을 하던지 뭘 하든지 해서 배고픔을 해결해야 한다. 물론 이 환경에는 분명 먹을 것들이 있다. 사냥 자금 또한 지원된다. 물론 그것도 짜증이 났는지 식당 의자를 발로 차 부숴버렸지만.

그 영양사는 '랍스터 급식'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라 한다. 밥 반찬에 랍스터가 꼭 필요한가. 본사 임직원들 사이에서 햄프밀크가 인기라는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다만 그런 문화는 분명 창의성을 키운다. 내 일은 정확하고 빠르게 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것을 안다. 그건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처음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기술적인 것을 요구하는 건 말이 되지 않듯. 

프로 중의 프로는 기본기와 디테일을 갖췄다. 그렇지만 실패하는 과정들을 거치지 않으면 결코 산 정상에 설 수 없음을. 

GS가 이 사회를 바꾸기를. 나는 어쩌다 이 회사와 엮여 애사심이라는 걸 가지게 됐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일할지는 알 수 없지만. 경영 또한 길고 긴 고민의 끝에서 정확하고 빠른 결정을 내려 하는 일일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많은 정보를 얻고 보다 넓은 시야를 갖추게 될지도. 이 사회 모든 낮은 곳에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함을. 고든 램지도 밑바닥에서부터 커 온 사람이라는 걸. 태어날 때부터 높은 곳에 있던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태로웠을지 모른다고. 버버리를 입으려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켄싱턴 가든? 무언가 고급스러워 보이기는 한다. 그렇지만 이 자연으로부터 클 모든 재능을 위해 오늘 난 또 다른 꿈을 꾸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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