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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Feb 27. 2024

lotte


"41896번 버스를 타고 왔어."

길을 잃지 않아 다행이라며 나는 위로했다. 그게 위로인가, 쵸지의 어깨를 토닥였고 난 그 얼굴을 봤다. 쵸지는 15분 늦었다.

그 동네에 카를리나옥시드라는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그 둥근 광장 가운데에는 초라한 동상 하나가 있어 몇몇은 그곳으로 모였다. '수면보행증을 앓는 자가 걷다', 정확히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그 옆모습만 보이도록 했는데 놀라운 일이었다. 사람들이 더는 그 모습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몇몇의 아이들만 손을 대고 발을 올리거나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오래전 노래를 흥얼거렸고, 그건 내 귀로 들려오는 소리임에 틀림없었는데 아무도 듣지 못한다. 쵸지는 무성영화를 사랑했다. 특히 그 핀란드인 감독 영화에서는 침묵 속 박력이 느껴진다던가 뭐랬다. 그 뜻을 같이 할 수는 없었는데, 나는 독백이 긴 소설은 질색이었기에 반대였던 것이다. 언제나 그런 식이다. 우리는 바다를 건너야 만나 서로 손을 나눠 만지게 할 수 있는 사이다. 그들은 그랬다. 가끔 그 앞에서 내 얼굴이 붉어지더라도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님을. 아무튼. 우린 또 그 공놀이에 대해 논하겠지.. 그곳에 앉아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며 앉아 있을 것을.

체리를 녹여 만든 그 소스는 반쯤 익혀 피가 떨어지는 고기에 찍어 먹는다. 그 맛이 먼저였다. 고기 맛을 알기 전 우선은 그런 달거나 짠맛을 보게 되며.. 끝내는 그 살 속 고인 물을 보려 한다. 혀는 카메라 렌즈와도 같다. 그 동그란 눈이 사람 몸에 난 구멍을 타고 들어가 무언가를 만나면 모두 놀란 눈이지 않았던가.

"이건 또 뭐야?"

"총알이군. 요즘은 그게 유행이지. 갓 잡아온 멧돼지라는 걸 알려주려 말이야. 이젠 설명도 안 해줘."

그곳을 몇 번 온 적이 있는 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저 머리 없는 남자가 이 식당에서 7년 일했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눈치 보지 않았다. 차라리 주위를 살피는 편이었는데 내 머리 어깨너머 어딘가를 훑는 것을 느끼고는 했다. 나는 잘 몰랐다. 등 뒤 어디쯤에서 누가 걷고 움직이는지를. 

"일본은 언제 돌아갈거야?"

그러면 그는 그렇게 되묻는다.

"한국은 언제 떠날거지?"

배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떠날 텐데, 그러지 못하는 건 꼭 배가 없어서가 아니었는데. 물론 그게 핑계라는 것은알지만 바다가 그토록 멀기만 해 가지 못했다. 열도는 언제나 나와 가까웠다는 것을.

내 마음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위협했다는 걸.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그때는 나도 몰랐다. 마주 앉은 그의 얼굴만 보지 잘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거울은 거짓말 같고 격한 긍정과 부정만이 오갈 뿐이었다고. 

당신에게 술이라도 한 잔 사며 하고 싶은 말은. 모두 비밀 같고 숨겨야 할 것만 같아 더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것을. 우린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그와 헤어질 때는 슬펐다. 팔뚝에 구멍 하나가 생겨 그곳으로부터 피 한 줄이 흐르는 것처럼 아팠다는 걸. 

다시 그에게로 간다. 그곳에 가면 쵸지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들뜬 마음으로 69814번 버스를 타고. 창문 밖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름이었다. 술도 썩을 듯 습하고 무더운 날들이었다.


https://youtu.be/1OEron4rXfk?si=GDs_lv1pozkRDVz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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