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 특히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주로 챙기면서 생긴 새로운 현상은 K리그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나는 어릴 적 구덕운동장에서 축구를 보곤 했지만 지금은 K리그를 잘 알지 못한다. 최고 미드필더를 만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이 땅에서 크고 자라난 중원 사령관을 보고 싶은데 아직 그러지 못했다. 축구는 골이 필요하고, 또 그걸 막는 골키퍼와 수비수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공은 경기장 가운데에 있다. 그곳 가운데서의 싸움을 이겨내고 그곳을 장악하는 일이 첫 번째라면 나는 미드필더를 키울 것이다. 그런데 나는 K리그 미드필더들을 알지 못한다. 부산에 좋은 축구장이 생기면 좋겠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 그 어린 나이 때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빠진 건 그 모든 것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프리미어리그가 최고가 된 배경에는 분명 경기장이 있었다. 극단적으로 가까운 필드와 관중석의 거리, 또 그 사이에 높은 구조물이 없는 것이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큰 참사로 인해 그런 구조물을 없애게 된 건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는데.
새로운 것보다 첨단의 그 무엇보다 더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사고의 전환인데, 반대편에서 보면 그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중원의 큰 머리 하나를 보기 위해 꿈만 꿨지 나는 투자하고 지원한 선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시간 쏟아붓고 열렬히 응원하는 그 누군가가 몇 년 사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나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인간이다. 진짜 그런 선수가 나와 성공하든 실패하든 난 그를 알지 못하며 그도 나를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렸고 그런 그가 훗날 진짜 등장하게 될지는 두고봐야 하는 일인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는 한국 선수 한 명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때 난 리버풀 정도는 진짜 오퍼를 할 거야 생각했던 선수가 진짜 내 꿈의 클럽으로 오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때는 리버풀이
그날 나는 유럽 땅에서 태극기를 가슴속에 품고 한 술집으로 향한다. 바르셀로나와의 맞대결이 생중계되던 그곳 안에서 유럽인들과 섞여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관람한다. 슬픈 건 나는 그때 그가 경기에 나왔는지 팀이 이겼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건 그가 그때 그 경기 명단 제외된 충격만이 머릿속에 남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건 2007 2008 시즌 결승전의 일이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우승한다. 찾아보니 그날 경기에는 나왔다. 그 경기에서는 졌다. 내가 그 대륙에 있던 때를 연도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때가 2007 2008 시즌의 일인지 2010 2011 시즌의 일인지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내 일생의 목표는 그런 선수를 만나고 내가 응원하는 팀이 우승하는 것이 아님을. 사람들은 다 현실을 살지만 모두 꿈을 꾸니. 직장 동료 몇 명과 담석어젓을 먹고 감동하는 꿈을 꾸다 깼다. 그 형태는 자리돔의 그것과 비슷했는데 실제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실제 존재한다는 게 재밌는 일 같다. 별로 재밌지 않지만.
내가 속한 클럽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조직폭력배로 보면 나는 추종세력일 뿐이지만 어떻게든 이 세계가 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사회에서 내 몸 내 신체를 필요로 한 조직과 엮인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기도 하다. 관중석과 그라운드 사이 경계물이 사라질 때 우린 서로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당신은 구글에서 Eric Cantona Kung fu를 검색할 것이다
나는 때로 이 사회에서 뛰는 플레이어 같지만 관중처럼 어떤 플레이를 감상하기도 한다. 내가 철장 안에 갇혀 피 흘리는 짐승이 된 듯한 기분도 드는데 억울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나도 분명 팬이니까.
공장에 벽이 없고 지붕이 없어 모든 것이 뚫려 있고 막혀 있지 않다면. 내 큰 바람이 된 것이다. 이게 농사라면 왜 밖에서는 할 수 없는 건지. 일을 하다 죽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낮은 곳에 위치한 자로 인식되는 사람이었다는 통계 같은 것을 순화된 방식으로 표현된 기사 같은 것을 본 적 있다. 조직은 폐쇄적인 곳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878년 중산층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작은 하나의 클럽이었다. 그런데 난 중산층과 노동자 사이 꽤 큰 괴리를 느낀다. 그때의 영국, 맨체스터는 어떤 분위기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늘 모두가 중원 사령관이 되어야 한다 말하는데 모순 또는 한계점이 분명하다. 그걸 매우 깨부순 게 맨체스터 시티라는 클럽의 그 감독이었는데.
단순히는 중산층도 노동자도 더 진화하는 것이 큰 목표일 수 있다. 나는 플레이어이며 관중이자 또 이 클럽의 주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모여 그 큰 클럽을 이루게 된 것처럼 점유율은 공을 소유하는 쪽에서 가져가게 되는 확률. 조직이라면 돈이 있어야 한다. 먼저 클럽을 이루고 싶다. 한 무리의 공을 차는 사람들을 본다. 그게 내 마지막 꿈이라면 내가 지네딘 지단을 우상으로 여긴 것은 하나의 멋진 개인기였던 것 같다. 난 데이비드 베컴으로 인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를 보게 됐다. 그들 게임을 본 후 더 이상은 그가 독보적으로 비치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