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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Jul 21. 2024

클럽


자기 위치를 지켜라. 자기 일을 해라. 적들이 몰려와 나를 둘러싸는데도 난 그럴 수 있을까.

축구에 푹 빠져 있던 난 어느 순간 느꼈다. 이건 정말 멋진 전쟁이라는걸. 2002년 제주도에 있을 때 월드컵 16강에서 우리가 이탈리아를 꺾을 때의 함성은 지금도 지울 수 없다. 기숙사가 다 뒤집어질 듯했고 전국 거리 곳곳에서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봤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 있고 싶었지만 상관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연결돼있었다. 나는 프리미어리그를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서만 봤으니. 어쩌다 영국인 리버풀 팬을 만나면 서로 꺼지라 할 정도로 물들어 있었으니까. 그와 나는 웃었지만.

잉글랜드 프로 축구팀들의 경기장은 배수를 위해 터치라인 바깥이 아래로 기울어져 있는 경우들이 있었고 그곳을 무대로 만드는 작용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가 그랬다. 맨 앞줄 관중석에 앉은 사람들은 그들을 우러러보듯 했다. 물론 가장 무서운 건 늘 리버풀 팬들이었지만. 그들은 정말 광신도에 가까웠다.

그곳의 축구도 이젠 꽤 변했다. 더 이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압도적인 1위가 아니고 같은 도시를 연고로 한 다른 팀이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발돋움했다. 중동의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바르셀로나의 감독을 데리고 온 뒤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로드리.. 로드리고? 지금은 그가 최고인가. 나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는 순간 모두 그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인걸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그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선수가 있었지만 모두 그를 최고로 만드는 데에 큰 뜻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그가 유나이티드 클럽을 떠날 때 난 비참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아메리카를 다시 세우자 외치듯. 물론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지 모른다. 밀려드는 이민자 난민을 모두 받아들일 때 그들의 정체성은 완전히 뒤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미국에 맞서기 위해 하나로 뭉치고자 하는 정신을 가졌다 본다.

이민자들은 그 싸움에 낄 수 없는 건가. 아프리카는 결코 평화롭지 못하다. 그러니 가장 큰 가능성을 가진 대륙일지 모른다. 그 빛나는 보석들을 품에 안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었다.

프랑스 파리 근교 작은 도시들에는 여러 축구 아카데미들이 있다. 그곳에서 프랑스의 어린 선수들이 크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아주 강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우연히 골대 근처까지 갔다 골대 뒤에서 한 선수의 플레이를 보는데 충격이었다. 지금도 그 선수를 찾고 싶다. 어느 클럽으로 갔는지, 혹은 불운하게도 프로가 되지 못한 것은 아닌지.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들 중에는 파리 근교 아카데미 출신들이 많았다. 그들의 플레이를 비슷한 높이의 시선에서 볼 때 그건 충격이라 할 만했다. 그 중앙 수비수는 상대 공격수를 완전히 눌러버렸으며 공이 자신의 뒤로 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2002년에 이탈리아 같은 팀을 꺾은 건 대단한 일이었다 볼 수 있다. 이 나라는 축구든 야구든 저변이 그리 넓지 못함에도 최고들이 모이면 어떻게든 해내고야 말았다. 이탈리아의 그 크고 기술적인 선수들을 상대로 그런 플레이들을 했다는 것은..

어떤 선수는 빠르거나 기술적이고 또 어떤 선수는 느리지만 더 많은 것을 보려 한다. 공간을 두고 볼을 다루는 선수가 있다면 좁은 틈을 파고들어 공을 전진시키는 선수가 있다. 축구의 큰 재미 중 하나라면 공간을 차지하는 싸움이었다. 공이 모든 것을 바꾸고 결정지었다면.

미친 속력을 가진 공격수 하나가 있다. 중앙 수비수가 그를 막아야만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 한 번 삐끗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버리는 것. 그런데 수비수는 공격수보다 골대 가까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리고 키가 더 큰 경우가 많기에 한 번 놓쳐도 다시 붙을 수 있는데.

여기서 미드필더 한 명이 기가 막힌 패스를 넣는다면.

파리 생제르망과 릴 OSC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봤다. 몇 개월 전에 있었던 경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새로 영입한 한 어린 수비수의 플레이를 보려고 말이다. 그가 킬리안 음바페를 어떻게 막는지 보기 위해서.

결정적인 장면 하나가 있었는데 저 정도면 기대할만하다 싶었던 것이다. 재밌는 건 그 패스를 넣은 게 우리나라 축구 선수였다는 것.

그 어린 수비수는 그 미친 속력을 가진 공격수를 적절한 거리에 두고 있었으며 그 탁구에 큰 뜻이 있던 선수의 발끝에서 어떤 공이 오는지를 두 눈으로 끝까지 보고 놓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패스는 정말 예술이었다. 그걸 뚫리지 않고 되려 반칙까지 얻어낸 것은 분명.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해야 함을. 그러나 세계는 이미 제대로 엉켜있는 것을. 만약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이번에는 더 잘 싸워야 한다. 나는 늘 경고했다. 그는 정말 힘든 상대라는 것을. 그리고 진짜 능력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유럽의 국가들이 미국과 경쟁하는 것과 또 다른 일일 것이다. 더 좋은 눈 더 좋은 생각들이 없으면, 더 빠르고 강한 선수들이 없다면 우린 1미터도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https://youtu.be/r3eTQm7MEto?si=AmhRaNb5u0hnnUas

그라면 민재를 더 잘 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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