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프랑스에서 파는 생수 중에 가장 입맛에 맞았던 물은 볼빅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물은 크리스탈린이었고 가장 저렴했다. 하지만 내겐 그 물 맛이 영 이상했고 뚜껑 따는 것도 힘들어 시선을 두지 않았다. 유독 말랑말랑했던 페트에 뚜껑의 폭도 좁아 잡고 돌리면 손바닥이 아팠다. 펜치나 몽키 스패너를 곁에 두면 나을 것이다. 그렇지만 크리스탈린이야말로 프랑스 국민 생수라 할 만했다. 삼성이 2019년 프랑스 브랜드 평가 지수에서 1위를 차지했을 때 크리스탈린도 10위권에 이름을 올려 놓고 있었다. 10위권 내에는 에비앙도 있었고 구글, 유튜브 등의 브랜드들이 포진해 있었다.
최근에 다르덴 형제의 영화 'Deux jour, une nuit'을 봤는데 주인공 마리옹 꼬띠야르가 크리스탈린 생수병을 들고 트램을 타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물론 그 영화 속 배경이 되는 도시는 파리가 아닌 벨기에 'Seraing'이었다.
메트로 역 안에서 삼성 광고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지나가는 국산 자동차를 보면서도 깜짝 깜짝 놀랐다. 프랑스에 오기 전까지는 해외 여행 경험조차 없었기에 그런 것들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국산 자동차가 외제 자동차로 보이는 경험을 했던 것이다. '홀리모터스'의 마지막 장면처럼 자동차들이 인간처럼 말도 하는 상황이었으면 참 웃겼을 듯하다. 나란히 주차된 르노 클리오와 현대 싼타페가 지나가는 나를 보며 그런 대화를 주고 받았다면 말이다.
"한국산 제품이 또 하나 들어왔군!"
"우리쪽에서도 흔한 비주얼은 아니야. 처음 보는 모델인걸."
그저 고철 덩어리에 불과한 것. 하지만 브랜드 로고를 붙여놓고 누군가가 솜씨를 발휘해놓으니 꽤 그럴 듯해 보였다. 평소 자동차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서서히 그 고철 종족들에 감점이입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마주친 가장 기억에 남는 국산차는 에스페로였다. 대우차 에스페로가 파리 20구 어딘가에 버젓이 주차돼 있는 모습을 봤을 때 카메라를 꺼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제니트 파리에서 열린 K-Pop 공연장에도 가본 적이 있었는데 프랑스인들의 한국 음악에 대한 관심에 놀랐다. 티켓을 끊어 공연을 관람하지는 않았다. 한 시간 정도 공연장 주위에 머무르며 몇 장의 사진들을 찍었는데, 한글로 적힌 피켓을 들고 샤이니에 열광하는 소녀 팬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그리고 일 년여 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 음악계를 강타하게 된다. 그 노래는 파리 거리 곳곳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되었다.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본 외국인들의 반응이 유튜브에 올라오곤 했다. 그렇게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다시 한국으로 수출되는 세상이기도 했다.
나 역시 궁금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며, 얼마만큼 알며, 또 한국인에 대한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나는 알고 싶었다. 거꾸로 내게 물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떻냐고. 그렇게 물어오는 프랑스인들의 질문에는 정작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그걸 알았으면 난 아마 프랑스에 올 일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나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파리라는 도시에 적응해 사니 이제 막 파리에 도착한 자들의 서투른 행동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관광객 같은 모습으로 하고 다녀 불안해 보일 때가 있었다. 한국 사람인 것으로 생각되면 더 신경 쓰였다. 메트로 열차 안에서 두리번거리고, 지도를 펴보며 우리는 관광객입니다라고 알려주는 일은 위험하다. 여행의 설렘이란 원래 지도를 펴보고 여기저기를 찾아보는 것이 아니었나. 내가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난 그들의 주머니가 걱정이 됐다. 물론 다가가 이야기해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런 식으로라도 말하는 것이다.
소매치기에 대한 걱정을 조금이라도 떨치려면 최대한 관광객처럼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파리가 그런 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덜 혼잡했던 시절에 살았을 파리 사람들은 더 혼잡해진 시대의 파리에 살게 되면서 더욱 날카로운 예민함을 가지지 않았을까. 가까이 다가가면 베일 정도로 말이다. 그러다 외투 주머니 천이 뜯어져 나가 동전이 흘러내려 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돈을 주워가는 것은 그들이 아닐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소매치기를 당하고 싶지 않다면 그들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 모습은 하고 다니지 말 것을 권한다. 그러면 다른 누군가가 움직이고 행동에 나설 테니까. 그렇다고 소매치기들을 모두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그 모든 예상과 추측들이 빗나갈 때도 있다. 그럼에도 가끔 기적이 일어나고는 했다.
센느 강 다리 Pont Royal 위에서 강의 풍경을 사진 찍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미국인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갑자기 내가 서 있는 쪽을 보며 동시에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어~~~!!"
그래서 난 응...?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랬더니 집시 여자 몇 명이 내 가방에 손을 대고 있다, 그런 모습으로 잠깐 굳어 있다 쏜살같이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기적이 일어날 때는 있었다. 물론 주위에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때가 있었다. 중요한 건 어디를 가나 스스로 살아남는 법에 익숙해져야 했다는 것이다. 먼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들 역시 그곳에서 살아남은 자들이었을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런 그들이 때론 여유로운 시선으로 관광객들을 바라보는 일처럼. 그러다 주머니 털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