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영화를 보고 역시 스탠리 큐브릭은 천재적이다 생각했다. 우주 여행을 떠난 자들이 어느 별 어느 땅에서 세로로 긴 검은 물체 하나를 마주하는데 그 장면 하나로 영화사에 새로운 점 하나를 찍었다 싶은 것이었다. 그게 극장 스크린을 표현한 것이라면 말이다.
내겐 그게 충격으로 왔다. 사람들은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그걸 돌려 세우면 시각적인 충격을 안겨다 줄 수 있는데. 영화의 본질이 만약 그런 것이라면.
묘 하나를 파자 의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끝내 땅을 더 판다. 그 아래 또 하나의 관이 있다. 그런데 그 등장이 시각적인 충격을 안겼다. 그 비슷한 것을 이미 본 적 있었음에도 말이다. 드니 빌뇌브는 우주선을 아예 세로로 세워놓는다. '컨택트'라는 영화에서 그는 그랬다. 그게 원작 소설에서 이미 표현된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가 관을 그렇게 묻어놓을 생각을 했을까. 그건 또 다른 충격임에 틀림없었다.
비록 단편영화이기는 해도 '라라랜드'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그런 시도를 했다. 세로로 긴 화면 속에 자신이 원한 장면들을 집어넣은 것이었다. 아직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건 흥행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거의 한 시간 정도를 공포에 떨었던 것 같다. 밖에 잠시 나갔다 오는데 문을 여는 것조차 두려웠다. 깊은 밤 혼자 난 무서웠다. 그리고 그 관이 나왔을 때.
이게 사람 관이야? 그런 대사를 들은 것 같았다. 난 그게 호랑이 관인가 짐작했는데.
뭐 그런 스토리로 가도 재밌었겠다 싶지만 그는 다른 방향으로 갔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그 시점에 변주를 시도한다. 그러니까 공포에서 갑자기 방향을 트는 듯했던 것이다. 잠시 밖에 나갔다 왔다. 다시 영화를 재생했을 때 내 기분은 또 달랐고 난 이 영화가 충분히 잘 만든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뭐 그런 평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겠지만.
제목도 파묘고 얼마 전 너무 빠져든 그 일본 영화 제목은 '큐어'였고 두 영화에서 난 공통점을 느꼈다. 무언가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 믿은 것이었다. 일본 귀신이 무섭다는 걸 느낀 건 아주 어릴 때도 있었지만 큐어에서 정점을 찍는다. 파묘는 극적으로 더 강렬하고 더 에너지가 느껴지는 영화였던 것 같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 등 비슷한 분위기로 영화를 몇 편 파더니 기대할 만한 감독이 나왔다 싶은 것이었다. 앞으로가 더 말이다. 명예든 돈이든 무언가 큰 것을 얻으면 그때부터 더 힘들어지지는 않을까.
공포의 절정은 플라자 호텔 장면이었다. 그곳에서 최민식, 그러니까 김상덕이 소리 내지르는 장면에서 너무 소름 돋았는데 끝내 그런 상황이 될 줄은.
귀신이 전화도 걸고 무슨 하이브리드 귀신이가 싶었는데. 어쨌든 교과서적이면서도 새로운 멋진 장면 하나를 본 것 같았다. 그 배우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때 난.
그 순간 저 배우는 영화 '바람'에서 몬스터 3학년 장을 연기한 그 배우가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맞았다. 내가 느끼는 게 틀리지 않구나 느끼는 건. 아무튼 영화는 감각으로 느끼는 일이니까. 스토리의 전개 개연성을 너무 이야기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내 글이 그렇게 될 거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진짜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렇게 보면 이런 영화를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화림과 봉길이 헬스클럽에서 몸을 단련하는 장면에서 첫 번째 박수가 나왔다. 무당이라는 과거, 그리고 그런 지금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그게 무척 인상깊었다. 영화 오프닝에서의 장면들도 아주 분위기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 귀신이 나오고 할 줄은.
조선 말, 대한제국 시절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어딘지 스산한데 귀신이니 더 공포스러웠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망한 나라여서 그랬던 걸까. 하지만 큐어에서 그 정신병원 환영 같은 것을 볼 때는 왜 그토록 서늘했던 것인지.
난 공포영화를 잘 안 보고 별로 관심도 없는데 큐어를 보면서 그런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다. 이미 더 오래 전부터 난 귀신 이야기도 쓰고는 했다.
기순애가 여우의 일본말 키츠네를 음차한 것이라는 걸 알고는 계속 메종 키츠네가 떠올랐고. 음차라는 게 웃기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 키츠네라고 기순애 프랑스라고 불란서 그런 것 말이다.
영화란 미신으로 가득 찬 세상처럼. '킬링 디어'를 봤을 때였다. 그때 난 영화가 건축일 수 있구나 생각했다. 건축처럼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일 또한 없을 것이기에.
그러나 그 모든 게 우연이라면. 그 우연 속에 많은 복잡한 설명하기 힘든 체계가 있다면 말이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이라는 공간이 생겼을까. 책을 넣기 위해 가방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으로 난 추정한다. 언어라는 체계가 도구의 갖추어짐보다 먼저였을지.
나 역시 무언가를 계속 파고 있는데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땅속 깊은 곳에는 비밀이 있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