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제목이 써진 책을 책상 위에 두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음을. 스무 살 때 난 운명과도 같은 책 한 권을 손에 쥔다.
'무로란의 곰'. 낯선 거리를 걷다 우울하고도 또 새로운 길로 들어서고 그 끝에 만나게 되는 조그마한 집에는.
도시를 알아가듯, 그 많고 많은 골목을 걷고 또 걸어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히듯 그 문장들을 곱씹었다. 그 작가를 알게 됐을 때야 비로소 난 영화감독 삶 그 환상에 빠져든다.
라 부장에게 그의 집 주소 연락할 길 따위를 물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10분 만에 밥을 먹고 일어서기에는, 아직 남은 하루의 시간들이 너무 많기에 그랬던 건지.
내 시간을 다른 사람에 빼앗기듯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다.
"혹시 그 분을 아십니까?"
우리 가진 시간이란 내 것도 당신의 것도 아니었다.
난 라 부장에게 그를 본 것 같다 말했다. 그날 그곳에서, 그때 중앙사진 전람회에서 그 모습을.
"일본인 소설가 말입니까?"
그 표정을 알듯 모를 듯했다.
"두 분이 아는 사이였습니까?"
고개 끄덕이려다 시선을 돌려 그곳을 본다. 너무도 짧았던 그때 그 추억을 떠올리며.
이곳으로 납북돼 온 사람들 숫자가 릉라도 5월 1일 경기장 관중석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는 걸 알았다면 난. 그 자료를 확인했을 때 난 그토록 거대한 경기장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광경을 본 듯 입조차 떼어내지 못할 것처럼.
일본어를 가르치기 위해 일본인을 납치하고, 그들은 그렇게 선생이 되거나 백인들은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한 선전용 배우로도 이용됐다.
"부산에서 한 번 본 적 있습니다."
그와 난 친구 사이가 아니었음을. 이젠 서로를 동지라 불러야 할지 모르지만.
같이 술 마셨던. 언젠가 어느 날엔 잠수함에 몸을 실어야만 했던.
그날 밤 좁은 길 한편 가라오케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그들은 그 계단 아래 세상으로 유혹하는 간판들 사이를 서성였다. 안개 많은 도시 시애틀이 우릴 불렀고, 끝내 발걸음을 돌려 골목 끝으로 가 문을 열고 들어간 그 가게 이름은.
내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 부를 때 그는 저 멀리 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때 그는 내가 부른 노래 한국어 가사를 이해하지 못했을 테다. 그럼에도 왜인지 알고 있는 듯했던 그 모습을 봤을 때, 그때 난 처음으로 술에 취한 일본인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라 부장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말 없이 듣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말이 많은 듯하다. 그의 얼굴 표정을 보니 그랬다. 나중에는 조금 힘들어하는 듯도 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그는 늙었으니, 그 모습에 차마 인사할 수 없었음을.
우리가 여기 있음에도 왜 아무도 우릴 찾지 않는가. 그 존재마저 지우고 잊어 이제 또 다른 창작자를 찾는 걸까.
술 냄새, 그 가게 안 냄새마저도 가스 연기처럼 피어 오를 듯이. 그때 부른 노래 가사가 어디선가 수초처럼 한없이 흐느적거린다.
"혹시 양주 파는 곳이 있습니까?"
다음 날 난 라 부장과 국영상점으로 갔고, 그곳에서 한 아이가 쇼핑 카트에 올라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밀차 위의 한 아이를.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고 미소 짓는다. 그러나 이내 굳고 마는 내 표정 내 모습은.
라 부장과 난 아무것도 사서 나오지 않았다. 그곳을 나온 내 손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그들 물건을 구매하는 일에 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들이 진열해놓은, 그렇게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만들어 완성해 놓은 것들을 말이다.
각종 공산품들이 날, 내 곁에 작은 아이라도 있는 듯 그 팔이 내 옷소매를 흔드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기억하는 건 그때 난 포장지 위에 쓰인 글자들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충분히 사랑스러웠음에도, 그러나 그 모습이 이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았기에. 밀려든 문화는 그 미취학아동을 그곳 위에 앉게 만들었다.
라 부장은 근처에 조그만 가게 하나가 있다며 그곳으로 날 안내했고 끝내 거길 나온다.
“부장님은 술 안 좋아하세요?”
입구 앞에 서서 난 그리 물었고, 그러자 그는 그렇게 대답하는데.
"그게 내 몸 속에 들어왔다 나가면 내가 멀쩡하지 않은 걸요. 저는 그런 일에 취미가 없습니다."
라 부장이 술 마시는 모습은 끝내 보지 못했다.
그가 툭 던진 대답은 그런 것이었다. 그런 말도 할 줄 알다니, 아니면 술에 어지간히 데인 모양이다 생각했다.
그 조그만 가게는 국영상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여기 있는 술들은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세 개의 벽이 술병으로 채워진 곳, 그곳에서 난 마치 조각품들에 둘러싸인 듯했는데.
들고 매만질 수도 있는 것. 빼곡한 술병들에 둘러싸여 곧 알코올 중독자가 될 신세인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말이다.
슬라브인들이 빚어낸 술을, 이것들을 콸콸 입 속으로 부어 넣으면 그들 영혼을 잠시나마 내 몸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마치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일 듯 난.
판매상은 내게 몇 가지의 술을 소개했는데 그 뜻을 알기 전엔 그 투명한 것들이 모두 같아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모든 이름에는 다른 뜻이 있었다.
내가 영화감독이 아니면 그들은 날 찾지 않을 것임을. 감정이 있어 볼 수 있다. 인간이라는 최후의 동질감만이 남았을 때 그들은 날 볼 것이다. 그걸 가진 인간이라는 걸 끊임없이 드러내 보이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내 몸 안 거대한 형체,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것을.
이곳에서도 난 영화를 찍어야만 한다.
"술은 일주일에 세 병 이상 구매가 불가능합니다."
난 곧 한 병의 보드카에 취하고 만다.
라 부장은 규칙을 만들었는데. 그에게는 그 자가 그런 모습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취한 모습이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그런 모습이어야만 함을.
몽롱해진 술병을 보며 난 이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걸 알았다.
그 모습이 영화 속 주인공의 것이라면 날 한심하게 볼까. 늦은 밤, 아니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은 방 안 홀로 술잔 기울이는 모습이라면 되려 날 동정하지 않을까. 난 연출자여야만 했다.
밤의 끝에는 오직 자신만이 있어야 한다는 듯 그 인물 그 얼굴을.
누군가는 그 모습에 자신을 숨기려만 할 것이다. 오로지 내 착각에 불과할지라도. 처음 보는 배우여도 그들은 이미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와 있다. 단지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시베리아로 유배 간 자들은 그곳에서 몇 병의 술을 비워냈을까. 집집이 따닥따닥 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술 중독에 빠졌을 옆집 남자의 불안함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건. 그가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대문호를 꿈꿨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혼자만의 대축전은 동이 틀 때야 끝이 나고. 그 주위로 곧 무수한 사람들이 모일까. 그 술병이 거대한 탑이 되어 다시 일으켜 세워진다면.
문을 열고 그곳 앞에 선 라 부장은 책상 위의 빈 술병을 근심 가득한 눈으로 본다.
"그만 주무십시오."
그 몸은 내 시선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술에 기대지 말란 말입니다."
그는 충고했다. 그 말에 난 측은한 마음이 들 뿐이었는지. 당신도 불안하지 않은가, 혹은 쓸쓸하고 외롭지 않은가.
그때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걱정해 주는 사람 있어 다행이라고.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는다면 그는 곧 증발하듯 사라지고 말 테니. 깊고 또 깊은 자신만의 세계로 말이다.
꿈을 꾸듯 뇌 벽 곳곳에 어떠한 형상들이 비추고 보여지며.
그 기기를 작동시킨 자는, 그 손의 주인을 알 수 없었음에도 그 장면들은 뚜렷하기만 했던 것이다. 어디선가 영사기가 돌고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군대에 있을 때 머릿속에 글을 썼다 한다.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까.
이 말을 조그만 상자에라도 넣어 오래도록 보관하길 바랄 뿐이다. 라 부장의 나이는 올해 서른 일곱이며, 그가 태어난 해는 지도자 동지가 태어난 해와 같고, 그 1982년은 내가 태어난 해이기도 했던.
라 부장은, 그러나 그 사람들 중 누구도 서로에게 말을 놓는 사람은 없었다. 난 보지 못했다. 라 부장이 지도자 동지와 대화하는 일을.
그들이 그러한 세계 속에 있다는 걸 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난 알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은 왜 친구도 적도 되지 못한 채 서로 꿰매어져 있는지를.
그 여자가 내 아이를 밴 것은 2019년 경이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그 여자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와 내 앞에 있었고.
아이는 울어댔고 우린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음을.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더 확실하게 깨닫는 과정이었기에. 그들은 또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걸 낳는다.
난 그저 그 배를 부르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는 듯했다. 보는 것 듣는 것, 또는 걷는 것, 영화를 찍는 것만이 스스로 만든 재능일지 몰랐다.
그 여자 뱃속에서 무언가가 자라난다는 걸 알았을 때 난 그 아이가 어떤 재능을 가졌을지 벌써부터 궁금했다. 상상의 껍질 속에 든 걸 난 만져볼 수 없었기에. 먼저 아들인지 딸인지가 궁금했다.
산부인과에서 기형아 검사를 했을 때, 그때 의사는 우리에게 말했다. 날 닮은 것 같다고. 믿지 못할, 아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어릴 적 난 영화감독이 되는 꿈을 꾸지 않았기에. 그때 난 그 여자가 흘린 피를 봤다. 왜 그래야만 했는가.
어느 날엔가 난 어떤 누군가는 우러러보는 인간쯤이 돼 있었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엔 그릴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난 그럴 줄 몰랐다. 찢긴 피부 조각들을 이어 붙여 그 자국들을 훈장처럼 내보일 때 비로소 난.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듯, 그곳에는 마을이 있었고 밤이 되면 집들이 여기저기서 불빛을 비췄다. 한 발자국 앞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걸어 내려올 때.
낮이 되면 안절부절못해 병원이나 찾는 인간이 돼 있었으니. 뱃속 아이는 잘 자라는지, 혹은 정상적인 모습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미리 들여다보고 확인하며.
여긴 열차 안을 왔다 갔다 하는 이상한 남자 여자가 없다. 역사의 후미진 곳에 누운 냄새 나는 부랑자조차 없음을.
더 이상 떠올릴 수 없는 건. 차 창문 밖 비를 피해 어느 지붕 아래에 선 남과 여를 보면서도 헤어짐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들이 사랑하는 모습을, 우리 하나 되는 것을 세상에 알리던 순간을 난 잊을 수 없고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