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는 정말 훌륭한 상업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봤던 영화를 다시 보고 또 보는 편이다. 그럼으로 인해 얻게 되는 것은 봉준호 감독이 ㅅ이나 ㅇ, ㅊ같은 초성을 선호할 것이라는 쓸모 없는 추측 같은 것이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이 그랬고, 기생충 같은 경우에는 제목에 ㅅ과 ㅊ초성이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삼척이나 속초 같은 도시를 좋아할 것이다 예상하는 것도 쓸모 없기는 마찬가지겠지만 난 무엇인가를 찾아내야만 했다. 두 글자 제목의 영화도 세 편이나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마더, 괴물, 옥자가 그랬다. 아무튼 난 설국열차를 보며 봉준호 감독의 철학이나 디테일, 그런 것에 푹 빠졌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크리스 에반스가 너무 멋있게 나왔다는 감상 하나다. 틸다 스윈튼 역시 비주얼적으로 대단히 압도적인 배우인데 그녀의 얼굴을 그런 식으로 망쳐놓은 것 역시 의도이지 않았을까. 잘 생기고 훌륭한 피지컬을 가진 크리스 에반스를 그렇게 잘 활용한 감독이 또 있을까.
커티스 에버릿, 그는 애드 해리스, 윌포드가 눈여겨보던 인물이었다. 어떤 식으로 그를 지켜봤는지는 분명하게 묘사되지 않았지만 그가 가진 지도자로서의 잠재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듯 말했다. 그 꼬리 칸의 리더가 엔진 칸의 문까지 부수고 쳐들어왔을 때 그는 말했다. 하지만 윌포드는 자신이 커티스를 부른 것처럼 이야기했다. 봉준호 감독도 알고 있었을까. 아카데미에서 자신을 부를 것을 알고 그런 설정을 했던 걸까. 알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난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단지 반복되는 특정한 패턴 속에서 무언가를 감지하고 발견해낼 뿐이었다. 특징적인 것들을 말이다. 또는 특별한 하나를.
나는 설국열차를 파리에 있을 때 봤는데 그게 프랑스 극장에서 본 첫 번째 영화였다. 앞으로 파리를 갈 수 없게 된다 가정하면 그 영화가 프랑스에서 본 마지막 영화였을 수도 있겠다. 그게 하필 한국 영화였다는 게 이상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원작이 프랑스 만화였기 때문에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언젠가 생제르망 역 근처 서점에서 그 만화책을 발견한 적이 있었는데 왜 안 샀는지 모르겠다. 'Le Transperceneige'. 그 만화 속에서 크리스 에반스가 튀어나왔다 생각하면 흥분되는 일이지 않는가. 캡틴 아메리카가, 그것도 한국 영화에. 그런 봉준호를 미국이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