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마리너

by 문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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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다. 햇살은 따갑다. 나는 선글라스를 낀 채로 누워 눈을 감은 채로 있다. 태양이 내 온몸을 뜨겁게 데운다. 이 순간을 기억해두고 싶다. 사람 앞날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수함을 타고 내려온 무장공비들에 끌려가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어두운 방 컴컴한 곳에서 구상을 마치고 시나리오를 완성시켜도 언제 밖으로 나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었고 나는 무엇도 선택할 수 없었다.

영화감독으로써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처음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이다. 혹은 분주히 움직이던 스태프 중 누군가 한 명이라도 서툰 모습을 보일 때다. 나 하나도 벅찬데, 이 마음 하나도 조종하기 힘든데 스태프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다니. 에밀리아 클리츠가 해변을 걷는 장면이다. 오프닝 구상이 떠올랐다. 그녀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 조세핀에 의하면 그녀도 언젠가 내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한다. 그저 입술을 몇 번 움직이며 한 서비스는 아니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녀가 선글라스를 끼고 걸었으면 좋겠다. 20m 정도를 바닥만 보며 걷다 불현듯 멈춰 서 바다를 보았으면 한다. 어떤 음악을 사용할까. 아니 파도 소리, 바람 소리로도 충분하다. 저 멀리서 뱃고동이 울리는 소리 정도는 들렸으면 좋겠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지나가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도 집어넣고 싶다. 텅 빈 해변의 한가운데에 누워 그 장면을 상상한다. 그날을 떠올린다. 한 서양인 여자가 해변가를 거닐었고, 그녀가 사라진 몇 분 후 난 누군가에 의해 납치당했다. 눈과 입이 테이프로 감긴 채 손은 묶여 수영복만 입은 채로 끌려갔다. 그곳에 가면 해변 한가운데에 선글라스 하나가 버려져 있을 것이다. 누군가 줍는 사람이 있다면 에밀리아에게 전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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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박한 자들의 숨소리는 남자의 것이었으며 두 명이었다. 팔 한쪽에 두 개의 팔이 감겨 있었다. 그들은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내 두 다리는 그들에 의해 걸어졌으며, 그 모습이 마치 경찰에 연행되는 범죄자의 모습 같았을까. 혹은 재활에 매진하는 환자의 모습처럼 비칠까. 같은 옷, 또는 비슷한 옷차림의 남자들에 끌려가는 신세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들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마스크로 가려져 멀리서부터 걸어온 두 남자의 모습이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어디론가 아래로 집어 던져졌는데 바닥이 출렁이는 듯했다. 곧 기계들이 작동되고 움직이는 소리들이 들렸음에도 고요했다. 바람이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도, 물살 소리 같은 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람이 머물던 냄새 같은 것이 느껴졌다. 탁한 공기였고 나는 숨을 헐떡거려야만 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내 오른쪽 팔에 주사를 놓았는데 어떤 약물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순간 오른쪽 귀에서 이명이 발생했고, 훗날 이교진에게 물었을 때는 그들이 플루니트라제팜을 썼을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했다.

침대는 덜컹거렸다. 잠에서 깼을 때 눈 앞은 여전히 컴컴했다. 요란한 엔진소리가 들렸고 아래로부터 불규칙한 반동이 전해졌다. 어디론가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차 안이었다. 하지만 정신은 여전히 몽롱한 상태였다. 완전히 깨고도 그것이 꿈속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현실 속에 있었다. 자동차가 도착한 곳은 평양의 외곽 어느 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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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달 동안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방 안을 드나드는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 그들의 옷차림이나 말투를 볼 때 북쪽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곳이 남조선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건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들은 한 번씩 내 방 창문을 열어 바깥 풍경을 보여주곤 했는데 방 안 한가운데 의자에 앉아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곳 안을 맴돌던 공기가 바깥의 공기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럴 때면 그들은 내게 담배 한 대씩을 건네곤 했다.

"담배 태우는 일에 취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원망 섞인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한 대 피우십시오."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신선한 맛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혀끝에 닿는 느낌에서부터 목구멍으로 넘어오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이질적이었다. 무엇보다 몇 달 동안 소음이라고는 그들이 매일 세시간 씩 틀어주는 영상물 정도에 불과했기에 모든 것이 청정하다 생각했다. 그 신선함과 청정함 같은 것이 가져다주는 공포란 떠올려본 적 없는 것이었다. 일생에 단 한 번도 그런 기분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모든 기억들을 털어내도 그렇다. 그때의 공포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그때의 참혹했던 감정들을 끄집어내 어두컴컴한 천장 위에 그리는 일을 더는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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