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밑단이 풀어져 급히 국제시장 어느 수선집에 들러 밑단이 다시 접혀 올려지기를 기다린다. 난 그런 장인에 대한 꿈이 있다. 난 옷을 못 만지니 대신 그렇게 꿈을 이루어주는 아저씨들에 대한 작은 동경이.
"함 보입시더"
오래도록 신길 꿈꿔왔던 신발을 처음 신고 간 곳은 남포동. 그토록 높은 밑창 두꺼운 신을 신고 걸으니 느껴지는 건 내가 아주 높은 곳에 있구나.
난 걸으며 신발 밑창이 어떻게 닳는지를 느낀 적 있었던가. 내 머리가 이 회사의 CEO라면 내 발은 말단 직원. 난 그들에 높은 책임을 부여하기로 했다. 당신들은 알렉산더 맥퀸 신을 신을 권리가 있다고. 그럴 꿈을 꾸라며.
아주 잘 만들어진 패딩은 결국 안 사는 걸로. 못 사겠다. 그런 옷을 몇 십만 원 주고 사는 건 아무래도 내 정책에 맞지 않는 듯하다.
며칠 전 아침 국제시장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마주친 Bear USA 패딩. 내 20대 때 여러 구제 의류 사이트에 올라오곤 했던 브랜드의 옷. 그때마다 갖고 싶었지만 못 건졌는데 몇십 년이 지나 다시 그 옷을 마주친다. 아침 첫 손님이니 싸게 해준다고.
"2만 원에 가져 가이소"
폼 나게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준다.
들어가 걸쳐본다. 원래 4만 원 5만 원 받아야 되는 옷인데 하며 밑밥을 깔고. 2만 원 밑으로는 안된다는 의지의 표현 같았다. 난 깎을 마음 없었다. 40만 원 50만 원짜리 패딩을 알아보던 차였는데 뭐. 내가 저 옷들이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아는데.
아주 잘 알지는 않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기저기서 거위 깃털이 새어 나오고 있었지만, 군데군데 진 얼룩 탓에 세탁비만 1만 5천 원을 들여야 했음에도.
Bear USA는 90년대 일본에서 생산돼 퍼진 옷이 00년대 한국 특히 부산으로 구겨 넣어진 채 들어온 옷으로 짐작된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옷을, 게다가 예쁘고 따뜻하기까지 한 패딩이 3만 5천 원이면 뭐.
대신 마틴 로즈 티셔츠를 안에 입으며 카드 하나를 숨기기로. 뭐 그리 비싸게 주고 사지는 않았지만.
그런 옷은 배송이 막 2주일 걸린다길래 잊고 지내자 했는데 일주일도 안 돼 도착했다. 마틴 로즈의 아이디어가 내 가슴으로까지. 지금 세상에는 그런 기적들이.
난 부산에 있고 누가 부르면 리우데자네이루로도 갈 수 있다. 그렇지만 힘들기만 하다. 내 나이 마흔셋 난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며 사나.
사람들은 내게 그런 말을 한다. 왜 그렇게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니냐고. 어떤 프랑스인 아저씨도 내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군인이냐며.
내 머리 위로는 전투기가 날고 미사일이 날아들고 있다. 그런 꿈을 꾼다. 허망하게도 멈출 테지만 울려 퍼지는 포탄 소리를 듣는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는 이 땅에서.
그런 이유가 아니고 긴 머리는 안 어울리는 것 같고 머리가 커 아예 짧게 깎고 다니자 마음먹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군인이냐고 스님이냐고 했다. 차라리 트레인스포팅에서의 이완 맥그리거 머리를 따라 했던 게 결정적이었을 텐데.
난 군인처럼 강직하지도 스님처럼 스스로를 잘 다루지도 못한다. 난 절제하고 못하고 인내하지 못한다. 견딜 수 없는 건 세상이 날 다루려 할 때다. 사람들이 날 길들이려 할 때였다. 저 길 위에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지 않았던가. 스님이 군인이 자기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다닌 것도 말이다.
그곳에서 오늘도 난 아무 목적 없이 걷는다. 그곳에 길이 있고 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싸우고 세계는 전쟁 중이다. 그렇지만 난 살고 싶을 뿐. 꿈을 찾으려 아주 먼 곳으로까지 향하는 꿈을 꿀 뿐이다.
https://youtu.be/QDYfEBY9NM4?si=TGoFpSYBxKEGac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