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Raccoon 20%

by 문윤범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 표현한다. 인간 죄를 대신해 그가 제물이 되었다는 뜻으로 안다. 그 양의 털을 빌려 추운 겨울을 지나는 나는 더 없을 큰 죄를 지은 것이었나.

내가 가진,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겨울 외투는 울 80%에 라쿤 20%의 비율로서 만들어졌다. 캐시미어만큼은 아니라던 디자이너의 말처럼, 그러나 라쿤 또한 고급 원사로 취급된다던 그 이야기처럼 호화스러움이 묻어나는 내 겨울 옷 코트.

그 라쿤 털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는지를 알게 됐을 땐 잠깐 망설였지만. 난 그저 누가 만든 옷을 입는 입장이기에 조금 더 자유로웠던 건지.

90만원 가까운 돈을 지불한 건 나였지 않나. 결국 큰 미소 지은 채 그 옷을 사들인 나는 당당한 듯 집 밖을 나와 거리를 걷는다.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모피 다운 반대 기자회견이 열렸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동물은 모피용이 아닙니다' '모피 반대! 다운 반대!' 그런 글자들이 적힌 천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 본능적으로는 그런 말을 하지만. 당신들은 동물 털 없이 겨울을 보낼 수 있는가 하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그런 반사적인 말은.

오래전부터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젠 겨울이 춥다고 느껴지던 때부터 그런 고민이 이어져온다. 동물 털 없이 어떻게 춥지 않을지. 그 옛날부터 인간은 동물의 가죽 모피를 훔쳐 쓰지 않았는가 하는 반대되는 질문도.

라쿤은 그렇게 좁은 우리에 갇힌 채 길러지고 이상 행동 등을 보인다. 양은 조금 더 자유로울 듯하나 결코 그렇지는 않은 듯. 메리노 울 생산을 위해 행해지는 뮬싱이라는 시술 기법이 논란이 된 지는 오래였다. 식육을 위해 길러지는 소의 메탄가스 배출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보고 또한 잘 알려진 일.

닭도 돼지도 그것들은 모두 좁은 우리에 갇혀 살다 죽고 먹히지 않았던가. 오늘도 배가 부르도록.

그 동물들이 희생되는 방식은 꼭 인간 삶 형태와 닮았다. 좁은 방 안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고통받다 밖으로 나가 살가죽이 뜯기거나 하는 등. 잔인한 건 고문의 방식 같은 것이다. 희생을 강요하는 방법 같은 것. 사람들은 왜 그토록 라쿤 털이 달린 옷을 찾았던가. 내 옷은 조금 다르지만.

양과 라쿤의 털이 마치 피부처럼 내 온 몸을 감싸듯. 주렁주렁 털이 달린 옷은 도무지 입을 용기가 나지 않아 그랬던 건지도.



그들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난 더 잘 입어야 하고 그런 다짐 아닌 다짐도 해본 적 있는 듯하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인지. 적어도 유행은 쫓지 않으리라~ 그게 도대체 무슨 쓸모 있는 말이었던지.

모든 나를 정당화할 수는 없기에 나는 조금 더 잔인해야 했다. 풀도 꽃도 열매도 모두 살아있는 것들. 무엇도 건드려서는 안되고 죽일 수 없다. 난 양과 라쿤 털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게 된다.

기도해도 안되고 구원받을 수도 없는데 무얼 더 기대해야 하나. 난 라쿤을 사랑하게 된다. 다시는 죽지 않게 하기 위해 더 고통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 외투는 내게 세상 하나 뿐인 것,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건 울 80% 라쿤 20%의 원단으로 만들어진 옷이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언어처럼 본능적이고 반사적인 것을.

그 옷이 그토록 사나워보인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는지 모른다. 혹은 미친 놈 같아 보이기도 했던 건 난 그런 옷을 입어 그랬는지 알 수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곳으로 날 가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