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오는 기차 그리고 그 앞 안경 낀 인물. 그 그림 하나를 노란 글자로, 핑크빛 도는 배경에 그 글자들을 두며 그 이야기를. 최근 본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 첫 번째 모습이었다.
요즘 서점에 가면 요즘에는 한국 책들이 좋은 디자인으로 튼튼하게 잘 만들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주 옛날 어릴 때 동네 서점에서 산 책 한 권도 그랬다. 차라리 그때 나온 책들 표지가 더 멋있었는지도. 단순하지만 더 강하게 다가오는. 어릴 때 동네 서점에서 산 책 한 권은 꼭 선물처럼 온통 꽃으로 장식된 듯 화려하고 눈부신 것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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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내게 더 가치있게 다가온 건 그 표지 때문이었다. 그 프랑스어판 책 표지를 봤을 때 추운 제주를 잘 표현하는 한 장면 같아 더 와닿았다. 'Impossibles Adieux'. 물론 한글로 '한강'이라 적혔을 때의 임팩트 같은 건 느낄 수 없었지만.
한강이 말했다. 제2의 한강을 배출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그가 한 이야기는. 문학 읽는 근육 같은 것을 길러야 한다는 말과 같은 이야기를.
글 쓰는 일은 글을 읽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 손이 눈보다 빠르다 하지 않았던가. 원시 시대 인간은 동물을 봤기에 동물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훔치고 속여야만 했던 것이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게 하는 법.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글 읽는 병에라도 걸려야 할지 모른다. 현실적으로는 그런 상태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통해 일정 근육을 생성하는 게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지만.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결국 최고가 되려면 몸도 정신도 아닌 승리의 여신이 내 손을 들어줘야 하기에. Nike, 즉 나이키의 스폰을 받으면 그 확률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소설가가 되기 위해 소설을 많이 읽을 필요는 없지만, 그러기 위해 대신 해야 할 일을 난 과연 하고 있는가? 그런 질문을 던졌을 때 난, 20대때 영화를 미친 듯이 봤으니 그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믿던 내가 내 소설을 읽고 앉아 있으면 가끔 시나리오를 읽는 듯한 기분도 들고.
엄청난 어휘력을 발휘하는 다른 작가들 글을 보며 그들은 근육이 많은 것이고 난 선이 아름다운 글을 쓴다 자위한 적 있는데. 춤추는 일. 붙어 싸우지 않고 혼자 춤추고 그게 웃긴 모습으로 비칠지라도 난.
10대 때 난 발레리나 강수진을 동경했다. 한 여자에 대한 사랑 같은 감정일 거라 생각했는데 커보니 그건 동경이었던 듯하다. 그 여자에게는 얼마나 많고 큰 근육들이 있었던가. 난 그 발레리나의 발 사진을 보고 못 볼 것을 본 듯했는데.
성공하려면 내 말을 믿지 말아야 한다. 실패하려거든 내 말을 믿어라. 상을 받는 사람의 말은 듣지 않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발도 많이 아파야 하고 또 내가 혼자 춤을 출 것인가 상대와 싸우는 격투를 할 것인가 그걸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어릴 때 멕시코 권투 선수들에 대한 신비로움을 가지기도 했던 난 최근 황인수가 어떻게 저렇게 잘 싸우는지도 심각하게 분석해 본 적 있다. 춤도 격투도 모두 아름답고 멋진 것이다. 만약 한강이 양쪽 모두의 특성을 잘 흡수한 작가 몸이라면. 차라리 보디빌더와 같다면.
그렇게 흘러온 강이었다면. 난 그가 쓴 책들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해 그걸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 가장 탐나는 책은 에디 슬리먼의 화보집 같은 사진집 'Berlin'이다. 그건 글로 이루어진 물질이 아니라 주요 목표물은 아니지만.
내 집 안 작은 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면. 아니, 책방 같은 사무실 하나 만드는 게 차라리 내 작은 소망일지 모르겠다. 저 옷들이 모두 나무인가 하며 그 숲에 있고 싶기도 한. 확실하지 않지만 난 분명 어딘가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