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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ㅁ

by 문윤범

https://youtu.be/iw2R8tt5eV8?si=n6Cv4Dq1ncnt5aaO


상대의 약점을 쥔 자 또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는 자가 승리한다.

'오징어 게임 시즌1'을 유튜브를 통해 대충 열심히 봤고 어제는 시즌 2의 몇 장면도 보게 됐다. 인간의 약점을 그리면서 그것으로부터 멋진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넷플릭스가 유튜브 채널에서 통으로 공개한 유리 다리 건너는 게임은, 그 시퀀스를 볼 때는 마치 얇고 단단한 유리 위에 선 듯 난 떨어져 죽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큰 불안을 느꼈는데. 재밌었다.

그 전 난 몇몇의 유튜버들이 올린 감독의 연출 해석 영상을 보게 된다. 그 감독이 가진 강점을 손에 쥘 수 없다 느끼니 난 이길 수 없다 느낀 것이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약점을 알고 또 상대의 움직임을 읽어도 행동하고 전개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물도 내보일 수 없는 걸 알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게임에서 이기는 건 그토록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그 전에 그 감독이 연출한 영화 '남한산성'은 그 게임에서 이기지 못한 작품이었을까. 흥행에 실패했으니. 먼저 그를 알게 되고 그 감독의 이름이 각인된 건 그 작품을 통해서였다. 정치와 언어를 잘 그리고 제대로 묘사했다 느껴 정말 재밌게 본 영화였다.

몇 년 전 난 정치인을 주인공으로 한 글을 쓰겠다 마음 먹게 된다. 아직까지도 명확히 나온 무언가는 없는 상태이지만 머지 않은 날 이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금은 그저 몇 줄을 몇 장면들을 그려볼 뿐이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오징어 게임은 감독이 십 년을 넘게 묵혀 놨다 다시 꺼내면서 시작된 이야기였다 한다. 결국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고 읽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할 수는 없었다.

일본에서 그 비슷한 영화가 먼저 나왔고 감독 또한 일본 만화에 푹 빠진 시절이 있었다고 하지만 운 좋게도 난 잘 만들어진 한국 영화 작품들을 보고 있다. 지난 날 본 다른 뛰어난 한국 영화들에서 느낄 수 있던 것들을 느끼기도 했지만 새로웠다.

그게 전부는 아닐 테지만 감독이 시즌 2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 했는데. 오징어 게임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작품이었지만 정작 창작자가 큰 수익을 가져오지 못하는 구조에 불만이 있었을 법도 하다. 하지만 먼저 손을 내민 건 넷플릭스 쪽이었다. 날 일하게 해준 회사에 고마움을 느끼다 이제는 내가 회사에 불만을 품는 그림이 그려진다면.

슬프게도 이건 게임이라는 것을. 돈을 벌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듯. 이곳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마음을 품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이 일어나는.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역시 그런 고민을 하는 듯했다. 어떻게 죽지 않고 같이 살아나갈 수 있나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 감동해 사장이 날 계속 일하게 해주고 더 높은 자리로까지 갈 수 있게 해줄지.

늘 혼자 영웅이 되는 주인공의 삶에 가끔 의구심을 품는다. 내 삶의 주인공이 나라면 난 오직 날 위해 일하고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내 삶이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데 그 안에 다른 사람을 품는 게 과연 말이 되는가 하고 말이다. 그게 진짜 솔직한 건지. 서로 경쟁하며 싸우고 살아남는 일이 진실한 것인지.

모두 살아남는다면 더 이상은 그런 슬픈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이 구조는 꼭 오징어 게임의 논리를 닮았는데. 서로 싸우게 하고 어떨 때는 서로 부둥켜 안게 하는, 그러면서 계속 일하게 만드는 자들이 있다 믿었고 확신한 채로 밀고 나갔다. 그렇지만 넘어지게 되고.

누가 내 발을 건 것도 아니었는데 스스로 엉켜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주인공은 나인데. 조연 단역이라는 이유로 수없는 다른 배우들이 죽어나가는데 난.

넷플릭스 CEO는 그런 논리를 가지고 일하지 않을까. 단지 이 회사 이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산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믿음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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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전략 비전을 담당하고 있지도 않은 내가 그런 고민을 하는 게 가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넓고 큰 땅이 있어야 한다. 돌을 옮기고 기둥을 세울 자들이 존재해야 했다. 그 빌딩이 완성되고 세워지면.

가장 높은 곳에서 위태로운 것은 결국 단 한 명. 모두가 사는 건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살 수 있게 머리 써봐라 압박할 수도 있었다. 모두 살아남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이 될 수 있다. 단 하나 없애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어서 그렇지.

지나치게 잔혹하고 끔직한 일이어서 할 수 없는 것이지.

남한산성, 그리고 오징어 게임에서 역시 잔인한 장면들이 존재했고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 재미있을 수 있는 건 간단하지만.

누구도 그런 장면들이 잘못됐다 말하지 않는다. 그런 장면들을 아이들은 볼 수 없게 눈을 가리는 방법 또한 존재한다. 아직 회사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읽을 필요 전혀 없다 말하는 입장이지만 보게 될 것이라 믿는다. 너도 결국 똑같다는 물음 앞에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움직이게 될지.

남한산성에서처럼 오징어 게임에서도 역시 좋은 많은 멋진 장면들이 있었다.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생각. 스릴 또는 철학을 다루는 건 다른 일이 될 수 있지만.

외국인들이 한글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지를 잘 알고 있는 눈이라 생각했고 동그라미나 네모 세모 같은 것을 전면에 내세운 게 주효했다 믿고 있다. 세계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고 옷에 적힌 숫자들 또한 그랬는데. 오징어 게임은 영화나 드라마를 넘어선 하나의 문화였다. K 컬처의 상승 기류를 탄.

남한산성을 보고 청을 굴복시키고 그 문화마저 흡수한 한족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 언어마저 없애 지워버리는 일이 얼마나 잔혹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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