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난 Ludovic de Sai..을 발견한다
이번 겨울은 기억에 남을 것이다. 꿈꾸던 일을 해냈고 그런 일들을 몇 가지 이루었다 생각하기에.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다. 추운 날씨에 몸이 굳은 건지 어려운 순간들을 잘 지나왔다 생각한 건지 방심하다 넘어져 이마를 바닥에 쾅!
돈 벌러도 못 가고 빨리 낫기만을 바라지만 부운 얼굴이 가라앉지 않는다. 몇 분에 한 번씩 거울 보는 소용없는 짓을 한다. 지금 이 나라는 우울하다. 뉴스 신문은 언제나 그랬다. 좋은 일을 다루면 그건 언론이 아니듯 심각한 이야기들만이 오간다. 몸도 마음도 축 처지고 의욕 마저 잃는 순간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일이.
작년 겨울과 이번 겨울 날 행복하게 해준 디자이너. 그가 만든 옷 외투를 입고 난 얼마나 많은 걸 얻었는지. 90만 원 돈 아까울 것 같았으면 안 샀지. 어떻게든 후회를 남기지 말아야 했기에 그런 건지 그 옷과 함께 행복에 겨운 날들을 보냈다. 꽤 오래 꿈꾸던 신도 신었다. 사라 버튼은 이제 지방시로 가고.
그가 뽑아낸 새로운 옷 아이템. 판매 수익금은 모두 기부할 예정이라 한다. 라프 시몬스의 그래픽 디자인을 오마주 했다고도 한다. 내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것이다. 꼭 내가 공격당하는 기분마저 들고.
이건 작품이고 또 다른 표출일 뿐. 늘 알 듯 모를 듯 했던 것. 내 작품이 내 또 다른 표출이 다른 사람들 가슴에는 감동으로 오고 또 못이 되어 박히는지. 내게 왜 그러는지 이해할 듯 이해할 수 없던 일들이 내게 왔고.
때론 분명하지 않은 거대한 한 무리의 존재들에 맞서 싸우며 적으로 오는 그들을 향해 난 무력시위마저 펼친 듯했다. 그런데 한 번도 얼굴 본 적 없는 사람과도 난 어떤 감정이라도 나눌 수 있는 걸까.
지금 길에서 마주치면 그냥 지나칠 사람.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죽는 이 사회에서 뭐라도 해야 하는 탓에 난 너무 많은 나를 드러내 보였는지도.
멋진 그래픽과 훌륭해보이는 디자인 균형, 또 입어 느껴 아는 그가 만든 옷의 튼튼함 그리고 완성도. 앞으로 누군가는 드러내게 될 반발심을 어떻게 감당할까 염려하면서도 뒤에 저 사진들은 너무 간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그래도 난 동료라 불러야 할 자들 얼굴이 빽빽히 프린팅돼 있어 난감하기만 하다. 팀이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하는 생각도. 그래도 팀원이라고.
저들은 팀원이니 그래도 뭉쳐 위로할 수 있으니 괜찮을 수 있다. 안태옥 디자이너에겐 어떤 정치적 동료들이 있을까. 이승환 같은 가수는 그래도 김제동 같은 연예인 친구는 있지 않았나? 친구인지 아닌지 잘 모르지만 그래 보였어서.
모두 정당에 가입해 아니면 무소속으로라도 정치인의 이름으로 외쳤으면 하는 꿈을. 정치인이 아닌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가 불리해질 수 있으니. 아니, 성립이 안될 수 있는 문제이기에.
정치에 굴복하는 것이 아닌 내가 정치인을 이길 수 있어 그 일을 하는 것이라면. 누군가가 내 동지가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고. 언젠가 모두 그래야 할 것이기에 경고하는 것도 아닌. 그게 이론적으로 맞다는 생각을, 오늘도 난 그런 주장을 펼쳐 보인다.
옷은 옷으로 말해야 하듯. 저런 구조라면 분명 실용적이고 편하고 오래 입을 것이다. 또한 디자인이 강렬하게 다가오며. 이건 논쟁거리가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왜 내게 충격으로 다가온 옷 한 벌인 걸까.
쾅! 그러고 난 후 축 처진 날들. 다른 새로운 충격을 찾아야 했던 이유는 아니었는지.
난 아직 그 옷을 사기 위해 쓴 돈이 아깝지 않다. 여전히 그 돈을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난 이미 더 많은 가치를 얻었을 테니. 그러기 위한 일이었을 테니까.
난 고백한다. 몇 개월 전 십만 구천 원 주고 산 신발 하나가 있는데 발이 아파 못 신고 있다. 그런데 팔고 싶지 않다. 문제는 그 신발이 집 안 구석 저기 있음에 위로받고 있다는 생각이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답답한 건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이 저기 저 구석에 있는데 정확히 어떻게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나오기를. 맞든 욕먹든 나와서 말하기를. 만약 계엄이 진짜 정당한 것이었다면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면 당장 불리하다 느끼더라도 나와 싸우기를. 다 실수하고 다 모자라지 않은가. 보기 싫은 건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자세를 마주할 때다. 꼭 거울을 보는 듯할 때다. 다시 나와 볼 수 있기를. 맞다 아니다가 아니라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기를.
그리고 난 Ludovic de Saint Sernin을 발견한다.